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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의 새아침-첫 햇살이 영하의 새하얀 고지를 밝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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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부전선=이두석기자】온누리가 새하얀 서설에 묻힌 전방고지의 새아침은 야간잠복조 병사들이 쭉 뻗는 기지개와 함께 활짝 밝아왔다.
『누구얏-』 『비로봉』―.
전선은 이상이 없었다. 온통 눈에 덮여 쥐 죽은듯 하면서도 고요 속에 번득이는 경계태세가 미더웠다. 떡국대신 설컹설컹한 고지밥, 아니면 뜨거운 라면으로 냉기를 쫓아야 하는 새해아침이 되어야했다.
크리스머스·이브 때 점화한 5색 트리가 아직도 반짝반짝, 어둠이 깔린 북녘 저 너머를 비추며 임자년을 맞는 첫인사를 띄었다. 최전방 1031고지, 백암산, 대우산등 해발 1천m이상의 고지마다 5백여개의 5색 불빛이 새아침의 햇살과 함께 따사로왔다. 1백55「마일」의 휴전선을 국군이 전담한 뒤 우리의 전열을 가다듬고 처음 맞이하는 새아침을 두고 병사들이 다지는 자주국방의 결의는 어느 때보다 든든했다.
해방으로부터 27년, 휴전된지 19년이 되는 72년의 전선은 국경보다 질긴 휴전선의 아픔을 안은 채 북의 「기습도발」에 남의 「반격태세완비」로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육군○군단 예하 중부전선엔 병사들의 산악숙달훈련, 야간공격훈련, 강추위를 이겨내는 구보강행군, 태권도를 익히는 구호소리가 「메아리」쳤다. 육군 제8571부대 관측소는 지난 10월에 벌써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고 겨우내 평균 영하 16도의 한파가 몰아쳤지만 아군 최전방전초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오성산의 적이 웅크리고 있어 동계기습공격에 대비할 반격태세를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군복무 34개월 동안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이곳을 지킵니다. 우리초소병 전원이 1등사수의 사격술을 뽐내고 있지요. 양껏 먹을 수 있는 자유급식에 월평균 10끼니의 고깃국, 20끼니의 생선국과 두툼한 피복, 영상20도의 내무반생활에 불편이 있을 수 없지요.』 해발 5백m의 돌격고지를 지키는 초병 김용철 상병(24·부산)은 새해아침을 전방고지에서 보내게 됨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면서 적이 우리의 전력에 눌려 감히 덤벼들지 못하는 것이 더없이 통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542고지를 떠나 야간잠복조 순찰길에 오른 돌격부대 K대위는 올들어 이렇다할 적의 도발이 없는 반면 지난 10월 중순 북괴 제5집단 군작전참모 운전병이 귀순해 온 것을 이곳 초병들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귀순병이 직접 나와 우리병사들과 일문일답을 나누며 북괴의 전쟁준비상과 복무기간 7년의 북괴병 생활의 지옥상을 털어놓는 대화의 시간은 산 정훈교육이기도 했다.
중부전선 돌격부대는 지난해 「병사전원의 1등 사수」운동을 벌여 지난 가을까지 피나는 훈련 끝에 이미 이 목표를 달성했고 체력과 담력을 기르기 위해 지난 여름 산악숙달훈련과 태권도훈련을 끝냈으며 30∼40m의 낭떠러지를 순식간에 뛰어내리는 로프강하 등 유격전술 훈련까지 강행했다는 것.
한해동안 강훈련을 받아온 병사들은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북괴의 동계침투에 대처키 위해 매일 밤 4시간씩 추위를 이기는 내한훈련과 야간사격술 및 야간공방훈련을 받고 있었다. 50여평의 널찍한 방에 「비닐」꽃장판을 깔고 「텔리비젼」을 비롯, 장기·바둑 등 각종 오락시설과 수많은 교양서적을 갖춘 사병휴양소가 지난 9월부터 문을 열어 비무장지대와 관측초소근무병사들이 나흘간씩 번갈아들며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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