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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제자는 필자>|<제23화>가요계 이면사(26)|고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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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풍류 따라 50년>
가요계에는 멋쟁이가 많았다. 인기직업이고 보니 여자가 잘 따랐고 수입이 좋았으니 낭만도 많았다.
술 잘 마시기로는 이재호 이었다. 1940년께 황금정(지금의 을지로2가)의 황금여관에 하숙할 때에 영화배우 전택이와 같이 붙어 다니면서 밤새껏 술을 마셔 곤드레가 되어야 직성이 풀려 대주호의 명성을 날렸다.
도 락을 즐기기로는 박시춘이다. 식도락·주도 락은 높은 경지에 있었다. 철 따른 안주·술맛 등에 대해서 깊이 알았고 그만큼 까 다로와 새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종로2가에 있던 우미 관 옆에 일본여인이 경영하던 「오뎅」집이 단골이었다. 그러나 꼭 한잔이었다.
여자가 많이 따르기로는 김정구가 빠지지 않았다.
한때 서울 광 교 옆의 광 교 여관에 들어 있었다. 38, 39년께 인데 한번은 데이트 약속을 잘 못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두 여인을 만나게 되어 야단이 난 일도 있었지만, 총각 때였으니 아무 탈이 없었다. 김정구에게는 늘 새 여인이 감돌고 있었다. 그만큼 인기였다.
재주 좋기는 남인수 이었다. 당구는 5백을 쳤고 기생방에서의 그의 인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북·장구 잘 치기로는 문호월이다. 나도 선친께 배워서 장구는 곧잘 치지만, 문호월의 장구솜씨는 대단했다.
술잔은 앞에 놓고 스스로 장구를 치면서 풍류를 즐기는 것이었다.
채규엽은「돈·환」이랄 정도로 「스캔들」이 많아서 여러 번 말썽이 나기도 했다.
가요계는 아니지만, 가요와 인연 있는 분으로 이서구는 잊을 수 없다. 이서구는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성미인 듯, 왔다 갔다 하여 한 사무실에서도 잠시 가만히 있지 않아 자리가 따뜻해 질 사이가 없었다.
그 대신 나갔다 들어올 때면 꼭 새「뉴스」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또 한 분「감격시대」를 작사한 강사랑과 가수 백난아·박단마, 작곡가 전기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없었다.
강사랑은 OK레코드에 있던 관계로 남인수의 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조선 악국 단에 관해서는 살아있는 사전이다.
백난아는『목단 꽃 붉게 피는 시라무렌 찻집에』하는 『황하다방』을 불러 41년대의 태평「레코드」를 빛냈던 가수이고, 박단마는 『맹꽁이 타령』『요 핑계 조 핑계』등 민요조 가수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전기현은 백년설이 부른 『두견화 사랑』을 작곡한 이로 초기 작곡가중 한사람이었다.
가수나 작곡가들은 대체로 예명을 많이 썼다. 박창오가 『반야월』등 10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 최고인데 대부분의 경우 예명이었다. 『나그네 설음』의 작사가 고여성은 본명이 조경환. 『비의 탱고』『청포도 사랑』등을 작곡한 나화랑의 친형이다. 나화랑의 본명은 조광환이다.
또『잘 있거라 항구야』의 작사가 천아토는 천정철이 본명이다. 태평「레코드」의 기획부장을 하던 사람이다.
『비오는 지평선』의 작사가 불로초는 김영일의 예명이다. 『포구의 여자』의 남방춘은 이제홍, 나음파는 송벽호, 월견초는 서정권 이다.
대를 이은 가수도 많다. 최근『처음「데이트」』를 부른 김계자는 명배우였던 김연실의 딸, 「재즈·싱거」송영란은 송순협의 딸이다. 『후랭키 손』은 손목인의 아들이다.
가수끼리 짝이 된 사람은 너무나 많다. 우리 부부이외에 백년설과 심연옥, 신「카나리아」와 김화랑 부부가 그 일부이다.
그러나 대개의 가수들은 유행가수, 즉 대중가요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천시 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음악가들이 예명은 쓰는 일이 별로 없는데 비해 가요 가수·작곡들이 예명을 많이 쓰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인생도 흘러 50년, 노래도 흘러 50년』하고 유행가의 구성진 가락을 회상하는 사람은 많으나 가요계는 너무나 개척자들이 일을 잊어버리고 있다.
막간 가수에서, 기생들이 의해서 발전되기는 했지만, 오늘날과 같이 가요가 현란한 꽃을 피운 것은 사회의 천대를 받아가면서 가요를 개척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만, 초기 작곡가·초기 가수·선배 대 가수를 추모하는 가요제 같은 것은 한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될 수 있다면「김용환 추모가요대제」같은 것을 열어 봤으면 흥행도 되고 선배추모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가수들은 흩어져 있으나 작곡가들은 가요반세기동지회를 꾸며 친목을 도모하고 작곡가·가수를 망라, 체계하고 가요의 연구, 개개인의 교양 쌓기에 힘 모으고 있다.
노래는 이제 가수들의 것이 아니라 대중의 것이다. 참다운 가요는 두메산골의 목동, 김매는 처녀 총각, 바다의 어부 등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있다. 새시대의 가수는 무대서의「매너」와 사생활이 관중의 존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끝>

<다음은 발명이야기>
편집자주=필자 고복수씨는 이 글을 시작했을 때 가벼운 고혈압으로 연세대 의대부속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에는 병세가 악화되어 중태이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입원실은 동 병원 별관 3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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