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체 엉킨 숯 더미…처참한 층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화 마가 휩쓸고 간 대연 각 호텔 화재현장은 불탄 기물과 시체가 얽히고 설킨 참상의 아수라장이었다. 연건평 1만1백 명의 고층빌딩 안은 시체수색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냄새가 숨통을 막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주검들이 당황했던 최후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구조본부는 발화한지 10시간만인 25일 하오6시쯤부터 시청직원 1백60명, 향군명동 중대 원 60명, 경찰기동대 1개 소대 등 모두 3백여 명을 동원, 이들 가운데 60명으로 6개 반의 시체수색 반을 편성, 이날 하오8시쯤부터 충무로 쪽 문을 통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과 함께 한전전공 20명이 호텔 1층∼8층까지 각층마다 복도에 4개의 서치라이트를 가설, 호텔 안을 밝혔다.
파이퍼에 마스크를 끼고 플래시를 든 수색반원들은 25일 밤 9시40분쯤 12층까지 올라갔으나 12층위로는 열기가 너무 심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 3층∼5층 사이에서 발견된 시체운반작업에 나섰다.
수색 반은 26일 상오1시40분쯤부터 다시 13층위로 올라가 하오4시까지 무려20시간에 걸친 수색작업을 마치고 청소를 했다. 구조반을 따라 지상21까지의 수색작업을 살펴보면-.

<골조만 앙상히>
▲지하실=바닥은 잿더미가 쌓여 발이 묻혔고 벽과 천장은 시멘트 골조만 앙상히 남아있었다. 창고 쪽은 피해가 거의 없었으나 천장에서 물방울이 비오듯 떨어져 수색반의 옷을 적셨다.
▲l층∼2층=로비천장에서 수십 개의 불탄 스팀·파이프가 휘어져 바닥에 닿았고 타다 남은 나무 조각들이 얽히고 설 켜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웠다. 발화지점으로 알려진 커피숍을 들어서자 노린내가 코를 콱 쏘아 앞서가던 수색 반 김충식씨(27)는 억하고 구역질을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돌렸다.
▲불이 난 커피숍 주방 안에는 황옥남 양(22)의 시체가 팔다리가 타버린 채 뒹굴고 있었다. 홀 바닥잿더미 속에는 종업원 임명자 양 등 3명의 시체가 팔다리만 비죽이 내민 채 묻혀있었다. 아케이드(주인 이은상·37)만이 유리문이 닫혀있고 인형·골동품 동 상품도 정돈된 채 말짱했다.

<트리도 까맣게>
▲3층=복도에 세웠던 크리스마스 트리와 카피트 등이 새까맣게 타있었다.
미용 실에서 발견된 2구의 여자시체는 질식사를 한 듯 비교적 깨끗했으나 미용 실에서 나온 6구의 여자시체와 1구의 남자시체, 그리고 복도에 있던 1구의 남자시체는 손발이 모두 불타고 없었다. 26일하오 정밀수색대 잿더미를 파헤치던 이상길씨(32)가 머리·몸뚱이·팔다리가 모두 떨어진 성별을 알 수 없는 시체 1구를 더 찾아냈다.
▲4층=복도에 한 가족인 듯한 8구의 시체가 계단을 찾아 대피하다 한꺼번에 쓰러져 죽은 듯 서로 얽혀있었다. 이 가운데는 12세 가량의 사내아이와 15세 가량의 여자아이가 40세쯤 되어 뵈는 남자와 손을 꼭 잡은 채 숨져있었다.
▲6층∼7층=6층은 거의 전소됐다. 7층의 객실은 피해를 거의 보지 않은 곳도 있었다. 한 객실 안에는 먹다 남은 맥주병과 담배 갑·양식이 담긴 그릇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8층=벽이 심하게 그을었을 뿐 복도의 카페트 일부도 타지 않고 있었다. 객실바닥에 남자시체 1구가 깨끗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욕실서 죽은 남녀>
▲10층=25일 자정까지 불길이 치솟았다. 26일 새벽5시쯤 복도에 쓰러져죽은 재일 교포 양인철씨(49)등 남자시체 3구와 욕실에 알몸으로 엉켜죽은 남녀시체 1구씩을 꺼냈다.
▲11층=기적적으로 구조된 중국인 여씨의 방 1194호실에는 여씨가 뒤집어 쓰고있던 물에 젖은 담요가 눈에 띄었다. 오버시스·컴퍼니 사무실에는 5구로 보이는 시체가 엉켜있었다. 수색 반은 이 가운데 이영순 양(19·동구여상야간부 1년)의 신원을 확인했을 뿐이다.
▲14층=충무로 쪽은 덜 탄 방이었었다. 불길이 닥치자 애타게 전화통에 매달린 듯 수화기가 모조리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서쪽 끝 방에선 일본 협립 전파 염하씨의 명함 갑이 고스란히 나왔다. 26일 하오 정밀수색대는 탱크에 거꾸로 박힌 남자시체 1구를 마지막으로 건져냈다.

<층마다 전화통이 내 동이 쳐져>
▲15층=비상계단 바로 앞방인 7호실 문에는 위난시 대피하는 비상계단 약도가 그대로 붙어있었지만 불길에는 아무 소용없었던 듯 6구의 시체가 침대 위와 복도 등에 어지럽게 누워있었다.
▲16층=불길이 가장 거세었던지 객실마다 매트리스와 기물이 모두 재가되어 수북히 쌓여있었다. 13구의 시체 가운데는 일본여인이 트렁크를 들고 문고리를 꽉 붙잡은 채 불타죽어 있었다.
▲17∼18층=내부가 모두불타 아무 것도 가릴 수 없었으며 수색 반이 발길을 옮길 때마다 재만 풀썩풀썩 날았다. 「신정」이라고 새겨진 양복이 나왔다.
▲19층=동쪽으로부터 세 번째 방에선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진 인도인 인드라·만수카니 씨(32·상업)의 여권이 고스란히 나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