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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인사법은 만세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종 정년으로 규정하고 있다.이법에 따라 「마놈」 원수는 내년8월엔 퇴역을 해야 하며「므라마스」대장은 73년7월옌 군복을 벗어야 한다.「쿠데타」전 태국은 입혜 군주국가였기 때문에 환법에 따라 69년2월 총 추거믈 치렀으며 그 결과「다놈」 을 당수, 「프라파스」를 부 당수로 하는 태국 국민련이 제1당으로서 과반수 세담을 차지했었다.
다음총선거는 73년에 시행할 예정이었다.73년이면「탁놈」 은 63세, 「므라파슨 는 61세가 되어 두 사람 모두 그전에 주법에서 물러나야 한다.
군촌· 건장· 초장· 다수의 개인회사 정년까지도 차지하고 있는 가능의 나라에서 고복을 벗어 던진다는 것은 무사 당하는 끝이란다.
게다가 집권대의 두 수뇌의 고령으로 여당인 태국 국민련태당 내부에서도 노장파와 소장파의 대립이 날카로와졌다.여당이 우세하기는 하나 하원에서는 예산안을 통과시켜주는 전제 조건으로 국회의창대부분이 1인에 각 선거구 사업비조로 2백만 「바트」 (미화1만불)를 배당해주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공산 「게릴라」소랑 등을 위한 국방빈 확보에 헐안이 된 정부가 이런 국회 의창들의 요구를 반대하자,하원은 예산안심의를 거부했다.
이것은 「쿠데타」 의 명분을 노리고 있던「탁놈」·「프라마스」일파에 결정적인실을 주었다.이에 또 하나의 명분이 제 발로 굴러들어왔다. 중공의 「유」가입 이후 그령지 않아도 골칫거리인 내외 공거 「게릴라」의 첨조이 강화되고 3백만 화교가 오시더는 기미마저 너다.
야는 장개석 공부와 손을 끊고 중공과 수교를 수립하자고 뗘들어 댔다.태수은,모시의 힘을 믿고 화교가 반정부화합으로써 중공침투기기의 범상이 되는 날엔 국가안보가 위럽 받는다고 정부는 판단했다.「바놈」 과 므라파스는 이와 같이 「쿠데타」 명분은 포착,국료가 에산안 심의를 거부하고 있는 7윌18일을 「D·데이」로 잡았다.
「쿠데타」 로 내어를 해산하고 내의 비간 세력을 거세하고 대 중공윤 사자 세로 복귀하여 장기 집권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타늠」 은 외신기자들에게 자기와「프라마스」 야당 의창들이 『으입장이』 ·『개새끼 (SONS OF BITCHES) 』 라고 불러도 창법때문에 마음대로 그들을 체포할수도 없었다고 그간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급 한국쟁, 공산 「게릴라」를 소탕하는데는 총 법마위는 방해물 로밖에 생각 되지않았던 것이다.
23일저녁7시 「타늠」 은 전차4대를 국회 의사당에,2대를 수삼관저에 출수케 하고 공병대 1개(3백명 추산) 를 정부 건살안으로 이동시켰다.
이로써 혁명은 피한방울 흘리지않고 성공했다. 저녁7시 혁명에 성공한「타놈」 은 8시 계엄령을 전국에 선포하고 밤 늦게 주궁으로 왕을 찾아가 왕도과 국가안보에 대한 색대 함협울 제거하기위해 다시 한번 군이 일어섰다고 상주했다.,
이렇게해서 68년6월20일에 공포된 신 항구 헌법은 정지되고 의회는 해산,경당은 해체되고 계엄이 선포됐다.
이리하여 「타늠」· 「므라마스」는 반 정부세력을 거세하는 한편 만61세면 퇴역하도록 된 군인사법도배제,장기 집권하려는 태세를 굳혔다.·「쿠데타」 의 제1인자인 「탁놈」은 비교적 온건파로서 「쿠데타」 전 정계에서 뜻을 비친적도 있다.
그런가 하필 다시 쿠데타를 주동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고 제2인자 「프라마스」나 또는 측근세력의 강요에 의해 옹대를 베었다는 것이라는 이도 있다.
「프라파스」주역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프라파스」는 군내외에 신망이 없어 겅년 총선을 통해서는 집권할 수 없기 때문에 「타놈」 의 인기를 업고 그를 부채질했다고 본다.
「타놈」과 「프라마스」는 사돈간으로서 「프라마스」의 딸이 「타놈」 의 며느리이다.
일부이선 「프라마스」 가 명실공히 「타놈」 읕 앞지르고있으나 「타늠」 의 후광이 없이는 계속 집도학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제2인자의 자리를 감수하고 있다고도 해석한다.
「쿠데타」가 귀도 새도 모르게 일어난 것은 「크만」 전외상이 7월17일 밤 6시30븐 ㄱ앙콕」 주재 외신 기자들과 만찬을 같이하고 있었는뎨 8시의 첫 성명을 「라디오」 로 듣고 혁명소식을 비로소 알았다는 것으로도 뒷밤침 된다.
밤9시 기자들에게 연설한 「코만」 은자기는 「유에」를 준비해 왔으나 밤7시에 「쿠데타」 가 났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연제를 바꾸어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들에게 세상이 애했음읕 처음으로 알려줬다고 그날만찬에 참석했던 한 기자가 털어 놓았다.
혁명 초야혁명위원회 (NEC) 앞에 포진한 전거 7.1일도 못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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