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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는 '바다 자동차산업' … 전곡항, 돈·일자리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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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에 수십 대의 요트가 정박해 있다. 2008년 이후 국제요트대회가 열리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주민 소득도 증가했다. [안성식 기자]

7, 8년 전만 해도 그는 가난한 어부였다. 찾는 이 없는 항구 한 구석 컨테이너 가건물에 살면서 우럭·광어 등을 잡아 팔고 수산물 직판장까지 운영했지만 벌이는 신통찮았다. 그러던 그의 삶이 2008년 무렵부터 바뀌었다. 한 해 수십 만 명이 들를 정도로 항구가 북적거리면서다. 전용면적 59㎡인 1억3000만원짜리 아파트까지 장만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항 어촌계 총무 강진영(55)씨 얘기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전곡항과 인근 주민들의 삶이 그렇다. 바다와 갯벌이 전부이던 전곡항이 항구로 변신한 것은 1998년. 시화지구간척사업 때문에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혀 생계가 막막해진 마산포(화성시 송산면 고포리)와 어도·형도·우음도 어민들의 이주단지가 형성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가난한 어촌의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5년 경기도가 전곡항을 마리나 시설을 갖춘 ‘테마해양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요트 같은 해양레저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전곡항에 그 전진기지를 세우겠다는 게 개발 계획의 취지였다. 전곡항을 택한 건 자연조건 때문이었다. 서해는 간만의 차가 심해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는 게 보통. 하지만 전곡항은 썰물 때도 바닷물 깊이가 3m가 넘어 요트를 부두에 매어 띄워둘 수 있었다.

 경기도는 국비 등 453억원을 들여 요트 200척이 정박할 수 있는 마리나항을 2011년 완공했다. 또 마리나항이 완공되기 전인 2008년부터 세계요트대회를 열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해양레저에 대한 관심을 끌고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회부터 열었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1회 요트대회가 열린 2008년 전곡항 관광객은 41만 명에 이르렀다. 지금은 연간 100만 명을 헤아린다. 지난 3일 전곡항에 요트를 타러 온 나범철(42·경기도 용인시 수지)씨는 “3년 전 요트대회를 본 뒤 매년 한두 차례씩 꼭 온다”고 말했다. 2006년엔 한 곳도 없던 요트·보트 제조업체는 3곳, 판매수리점은 13곳이 들어왔다. 요트나 보트를 빌려주거나 태워주는 수상레저업체 수도 0에서 8로 늘었다. 주민 삶도 넉넉해졌다. 강씨가 운영하는 수산물 직판장 매출은 한 해 3억원을 넘는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농사를 짓다 빚 보증을 잘못 서 빈털터리로 이곳에 왔다고 했다.

 2001년 전곡항에 둥지를 튼 김용만(55)씨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에서 시작해 지금은 3억8000만원의 땅을 사서는 2층집을 지었다. 오로지 전곡항에서 생선을 잡아 판 것만으로 수억원대 자산가가 됐다.

 2000년대 초반 황무지 같았던 땅은 요즘 3.3㎡당 1000만원을 호가한다. 그 새 주민은 10여 명에서 128명으로 늘었다. 중앙대 경기항만물류센터 방희석(62) 소장은 “요트 산업은 자동차산업처럼 금융·서비스업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곡항 발전에 걸림돌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입법예고한 ‘마리나법 개정안’이 아직도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마리나 항만의 해안지역에 외국처럼 아파트, 타운하우스 등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게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개정안이 일부 지역과 해양레저를 즐기는 부자들만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경기도가 재정난을 이유로 세계 요트대회(예산 20여억원)를 격년제로 치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요트대회가 열리지 않게 돼 전곡항 일대 지역경제에 타격이 예상된다.

화성=윤호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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