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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조 고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영국 소설가 「헨리·허드슨」의 단편 하나가 생각난다. 백조의 이야기다.
어느 호수에 매일같이 한 소녀가 「캔버스」를 들고 찾아온다. 호수에 떠 노는 백조를 그리러 오는 것이다. 그 백조는 자기를 아름답게 그려주는 소녀에 마음이 끌려 여간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날씨가 차가와 지자 그 소녀의 발길이 끊어진다. 백조는 호수에 사는 한마리 송어와 벗이 되어 잠 잘 때나 헤엄칠 때나 외로움을 잊는다. 어느날 낚시꾼이 와서 그 송어를 낚아낸다. 백조는 분노를 참지 못해 그 낚시꾼에 달려든다.
자연을 찬미하는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감동을 자아낸다. 어느 엽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기러기도 여간 정적인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 엽총에 맞은 기러기가 한마리 떨어지면 일행이던 수십 마리의 기러기 떼가 그 주변에 모여든다고 한다. 상처를 입고 날개를 퍼덕이는 기러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은 부축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 하는 것이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조류는 포유 동물 다음으로 인간과는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 야조일지라고 사람이 길들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인간과 정분을 나눌 수 있다.
비록 새장 속이 아니라도, 사람과 새가 친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덴마크」에는 해마다 이 무렵이면 문밖이나 지붕에 보리 (맥) 짚단을 쌓아놓는 풍습이 있다. 들새들이 그 속에 와서 추위를 견디게 하는 것이다. 누구의 북구 기행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크리스머스·이브」가 지난 아침이면 그 보리 짚단 속에서 합창을 하는 새들의 노래소리와 교회의 종소리가 어울려 「자연의 교향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실로 자연은 인간과의 유대 속에서 이처럼 환희의 경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도시의 매연과 소음 속에 갇혀 자연을 잃고 사는 생활이 얼마나 무 기미한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최근 동해안의 화진포 쪽에 고니 떼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마치 목련꽃의 병풍이라도 두른 듯이 수평선을 일색 무늬로 수놓고 있다.
「고니」 (사진) 는 속칭 「백조」로 불리는 천연기념물이다. 겨울이면 「알래스카」나 「시베리아」에서 남하한다. 우리 나라 낙동강 하구가 그들에겐 가장 알맞은 월동지라고 한다.
고니는 「기러기」과에 속하는 대형 조류의 일원으로 인간의 침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 환경 오염에서 받은 피해는 물론, 늘 엽사들의 겨냥을 받는 젓이다.
모처럼만에 나타난 이 「자연의 환희」가 엽사들의 무지한 총성에 쫓겨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자연의 환희마저 없으면, 우리의 주변은 얼마나 더 살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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