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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현실 환경이 더 큰 문제” 건국대 의대 하지현 교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8호 22면

조용철 기자

하지현(46) 교수는 지금까지 아이들부터 성인까지 100명에 가까운 게임 중독 환자를 치료·상담했다. 당연히 “게임 중독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전체 사용자 대비 중독자가 얼마인지 따졌을 때 게임 중독이 4대 문제로 꼽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게임 자체보다는 게임에 몰두하게 만드는 환경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알코올·도박·마약·인터넷게임 … ‘4대 중독법’ 논란

-‘4대 중독법’이 논란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정신과에는 CAMH(Centre for Addiction and Mental Health)가 있다. 중독을 정신건강과 분리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알코올·도박·마약 중독은 범죄로도 연결된다. 그렇다고 중독자들을 범죄자로만 취급할 건 아니다. 환자로 보고 치료해야 한다. 중독을 예방·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건 맞다. 단지 여기에 왜 게임을 집어넣었는지 모르겠다. 4대 사회악에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과 함께 불량식품을 포함시켰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세 가지에는 이견이 없는데, 한 가지 이상한 것 때문에 본말이 전도돼 버린다.”

-게임은 중독되지 않는다는 건가.
“게임 중독은 있다. 특히 네트워크 게임들은 큰 중독성을 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수치로 보나 폐해로 봤을 때 4대 문제에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용자 대비 중독자가 얼마인지 따졌을 때 게임은 미미하다고 본다. 오히려 담배가 들어가는 게 맞다. 담배는 100% 니코틴 중독이고 의학에서 하루 한 갑씩 20년 피운 사람이면 폐암 발병 고위험군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어떤 경우가 중독이라고 보나.
“점점 자극을 자주, 강하게 줘야 하는 내성이 있어야 하고 매일 그 생각만 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절에는 실패하고 중독이 생활 속으로 침투하는데, 이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중독 물질이나 행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시간·장소를 확보하는 데 지나친 노력을 하고, 해야 할 일을 방기하거나 비합법적인 행동도 한다. 이 수준이면 특정 물질이나 행위에 중독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

- 행위 중독은 따로 있나.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은 중독성 물질을 규정한다. 이 안에 알코올·카페인·니코틴 등이 들어 있다. 지난 5월 나온 개정판이 도박을 중독 질환에 포함시켰다. 이전에 도박은 충동조절장애의 하위로 여겨졌다. 행위 중독이 처음 명시됐다.”

-DSM에도 게임 중독이 등장했다는데.
“아직은 의학적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스포츠에 비유하면 정식 경기가 아니라 시범 경기라는 의미다. 새로운 병리현상이 생겼을 때 이것을 독립적인 질환으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질환의 새로운 증상으로 볼 것이냐는 무척 중요하다.”

-게임이 증상일 수 있다는 얘긴가.
“게임 중독 같다고 병원에 오는 아이들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인 경우가 많다. 집중을 못하는 아이가 게임에는 집중하니까, 부모는 게임에 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 자극이 강하니까 집중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땐 ADHD를 치료하면 게임 문제는 해결된다. 또 요즘 청소년 중에 우울증을 앓는 학생이 많다. 그럼 또 게임만 한다. 이렇게 현실에 적응을 못하는 증상적인 표현이 게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왜 게임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 같다.
“아이들이 말하는 게임의 장점이 있다. 우선 공평하다는 거다. 공부는 끝도 없고 6개월 한다고 티도 안 난다. 게임은 시간·노력 들인 만큼 레벨이 올라간다. 인정받으니까 성취감도 느낀다. 현실과 달리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또 게임은 실패에 관대하다. 이번 판에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현실은 한 번 지면 끝이다. 입시도 창업도 실패하면 끝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약자이거나 붕 떠 있는 사람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이 아니라 게임 외 환경이 문제인 셈이다.”

-실제 상담하고 치료했던 게임 중독 사례를 소개해 달라.
“23세 성인 남자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두 번이나 인터넷 중독으로 입원한 경험이 있었다. 제대하고 3년간 게임만 했다. 사회적 관계도 없었다. 게임 대체 활동을 찾게 해 운전면허를 땄고 운동도 했다. 학원에서 사회적 관계를 경험하게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했다. 결국 여자친구도 만들고 자격증 시험도 봤다. 9개월이 걸렸다.”

-특히 청소년이 게임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데.
“게임 문제로 상담하는 부모가 오히려 줄었다. 요즘 부모는 인터넷 보급 후 성장한 사람들이다. 이전 세대 부모가 애들이 조금만 게임을 해도 걱정이라며 병원에 왔는데 이젠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부모 세대가 이해를 못하니까 통제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게임은 질환으로 볼 게 아니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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