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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통제하고 싶은 본능이 권력욕의 씨앗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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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25면

11살에 서로마제국 황제가 된 호노리우스(Honorius). 장-폴 로랑(Jean-Paul Laurens)의 1880년 작품. [사진 위키피디아]

기원후 330년 5월 11일. 10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로마를 포기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오늘날 이스탄불을 로마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지정한다. ‘신 로마(Nova Roma)’로 또 한번 1000년의 영광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영원한’이란 언제나 헛된 욕망일까? 터키와 북아프리카 중심인 동로마와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로마는 점차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395년. 동로마는 훈족의 위협에, 그리고 서로마는 서고트족 반란에 휘말린다. 끝없이 목을 베고 씨를 말려도 계속 밀려오는 반달, 수에비, 알란 게르만족들. 거기다 영국을 강탈한 가짜 황제 콘스탄티누스 3세. 누가 로마를 이 난국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

김대식의 'Big Questions' <16> 권력이란 무엇인가

답은 스틸리코였다. 반달족 야만인을 아버지로 두었지만 누구보다도 더 로마인다웠던 로마의 마지막 장군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선대 황제 테오도지우스 1세는 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세상을 떠난다. 11살에 서로마제국 황제가 될 아들 호노리우스를 지켜달라고. 스틸리코의 보호 아래 아이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는 여전히 아이의 지능과 능력만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는 궁에 숨어 당시 유행인 닭 키우기만을 원했다. 그리고 408년 8월 22일. ‘야만인 대군’이 로마를 위협할 때 호노리우스는 로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에게 사형을 내린다. 물리적 권력을 가졌지만 철없는 황제의 아버지가 베푼 은혜를 잊지 못하던 늙은 장군은 칼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서로마는 ‘썩은 왼손으로 자신의 멀쩡한 오른손을 자르고’ 결국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1500년 후. 동로마제국의 후계 국가라고 자칭하던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볼셰비키 혁명. 괴승 라스푸틴의 영향 아래 자신들만의 판타지 세상에 살던 차르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황비, 그리고 아들·딸들이 수백 발의 볼셰비키 총알을 맞고 쓰러진다. 그 후 ‘무례하고’ ‘거칠며’ ‘미개한’ 스탈린이 당 지도자가 되는 건 참을 수 없다며 그의 숙청을 요구했던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스탈린은 재빠르게 움직인다. 방법은 항상 같았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부하린과 힘을 합쳐 레닌의 실질적 후계자였던 트로츠키를 몰아낸다. 그러곤 부하린과 함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숙청한 뒤 마지막으로 부하린을 총살한다.

역사 조작을 통해 권력을 지탱했던 스탈린. 숙청된 비밀경찰 NKVD 국장 에조프는 사진에서 지워진다(오른쪽).

혼수상태 스탈린에게 침뱉은 충복 베리아
스탈린은 볼셰비키당의 원로들, 레닌의 친구들, 경쟁자, 동반자,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자, 장군들을 숙청한다. 스탈린이 두려워했던 사람도 있고, 아무 이유 없이 죽은 이도 있다. 자신도 끌려갈 것을 예상했던 사람도 있고, ‘나만은 스탈린의 절친’이라고 믿었던 사람도 있다. 혁명가들을 제거한 비밀경찰 국장들의 운명 역시 다르지 않았다. 멘진스키(임기:1926~1936), 야고다(1934~1936), 에조프(1936~1938) 모두 자신의 후임에게 처형당한다.

가난한 러시아에서 300조원의 개인 재산을 모은 황제를 총살시킨 트로츠키를 망명시킨 지노비예프. 그를 숙청한 카메네프를 처형한 부하린. 그를 몰아낸 멘진스키를 독사시킨 야고다. 그를 때려죽인 에조프를 고문해 엉엉 울게 한 베리아. 결국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일까? 수십 만, 수백 만의 피해자·가해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스탈린은 살고 그들은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숙청과 고문과 총살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가 아마도 스탈린식 권력의 최고 비밀무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스탈린도 인간이기에 단 하나만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도 언젠간 죽을 거라고.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던 그날. 밤에 일어나 자정까지 카우보이 영화를 즐겼다는 스탈린. 소련에서 제작되는 모든 영화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스탈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볼가-볼가’라는 러시아식 뮤지컬을 위해 직접 노래를 작사했다는 스탈린. 영어를 못하는 소련연방공화국 문화부 장관(이반 볼샤코프)에게 ‘타잔과 제인’ 영화를 동시 통역하게 한 스탈린(볼샤코프는 “타잔 온다, 타잔 간다”라는 식의 엉터리 통역을 했다고 한다). 죽어가는 스탈린을 둘러싼 그의 마지막 머슴들. 베리아, 말렌코프, 불가린, 흐루쇼프.

스탈린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자 베리아는 갑자기 그를 욕하기 시작한다. 그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순간 스탈린의 깊은 숨소리가 들리자 베리아는 무릎 꿇고 스탈린 손에 키스한다. 하지만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 스탈린. 베리아는 벌떡 일어나 스탈린에게 침을 뱉는다. 충분히 있었을 만한 영화의 한 장면이다: 또다시 깨어나려는 스탈린을 베리아는 베개로 눌러 죽인다. “왜, 도대체 왜 죽지 않느냐”고 외치며.

권력의 핵심은 제어다. 하지만 모든 제어가 권력은 아니다. 밤하늘의 행성들을 제어하는 중력은 그냥 자연의 법칙일 뿐이다. 자연의 법칙은 어길 수 없다. 근본적으로 어길 수 없는 힘은 권력과 무관하다. 나에 대한 통제 역시 권력이라 보기 어렵다. 나의 다양한 선호도와 의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자제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을 제어하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권력이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어쩌면 생명 그 자체가 권력의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리화학적 현상을 통해 분자들이 합쳐지고 첫 세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단일 세포로는 ‘지구’라는 이 험한 세상에서 존재하기 힘들다. 다른 세포들이 나와 합쳐지고, ‘나’를 위해 일하도록 해야 한다. 더 많은 세포들이 ‘나’와 결합할수록 ‘나’의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서로 합쳐진 세포들을 제어하기 위해선 새로운 도구가 필요해진다. 처음엔 호르몬, 그리고 후엔 전기적 신호를 통해 세포들은 제어 당했을 것이다. 수많은 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몸’은 결국 ‘생물학적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 권력은 몸 내부에서만 가능하다. 한 나라 독재자의 권력이 국경선을 넘으면 무의미해지듯 내 몸 안의 세포들을 제어하는 통제력은 몸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몸 밖에 있는 세포덩어리들 역시 내가 통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은 이 문제를 ‘확장된 표현형(Extended Phenotype)’을 통해 해결했을 거라고 가설한다.

르네상스 시대 권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 디 티토(Santi di Tito)의 그림

이 세상에 영원한 민주주의는 가능할까?
인간은 결국 ‘언어’라는, 몸 밖으로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 내가 아닌 타인들을 제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가서 마실 것 좀 사와”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듯, 베리아에게 “저놈 쏴 죽여”라는 명령 하나로 스탈린은 러시아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 홉스가 주장하고 스탈린이 증명했듯 ‘인간은 다른 인간을 사냥하는 늑대(homo homini lupus)’라고 가설해 보자. 어차피 인간은 잔인하고 미개하고 험악하므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누구보다 더 사악하고 더 험악해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적나라한 주장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고대 그리스 아테네인들은 왕과 독재자를 몰아내고 고민에 빠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제어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클레이스테네스는 ‘Isonomia’, 그러니까 ‘법(nomos) 앞에 평등(iso)’이 핵심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떤 법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말일까?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전에도 ‘모든’-물론 노예·여자·어린아이들을 제외한-아테네 시민들은 가족관계에 얽힌 씨족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의 이득을 가족의 이득으로 연장할 뿐이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가장 공평한 법은 의도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비의도적 랜덤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테네시는 가족 간의 경계선을 무시한 랜덤적 선거구(deme)로 나누어진다. 시의회는 랜덤으로 선택된 신민들로 매년 새로 구성된다. 모든 결정은 과반수 deme의 표를 얻으면 통과되고, 6000명 시민들의 표를 얻으면 그가 누구라 하더라도 10년간 망명을 떠나야 한다. Deme의 통지, 고로 민주주의 시작이었다.

스탈린의 후계자들이 힘겹게 유지하던 러시아식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에서 서양화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예언’한 바 있다. 민주주의·자본주의·서양화는 같은 철학의 세 가지 면이기에 서양화 없는 자본주의는 불가능하고, 민주주의 없는 서양화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예언은 예언자의 희망사항일 뿐. G2로 성장한 중국은 자본주의적 공산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이슬람 국가들은 민주주의도, 서양화도 없는 자본주의를 추구한다.

인류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던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겠다던 18세기 말 신대륙의 미국. 젊은 프랑스 철학자 토크빌은 신대륙에서의 경험을 정리한 『미국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디폴트된 오늘. 이 세상 모두가 민주주의란 이름을 달고 다니기에 어느덧 ‘지루해진’ 민주주의. 검증된 정보보다 초등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음모설이 더 주목 받는 오늘. 게리맨더링과 ‘티 파티’ 집단들이 민주주의 원칙을 위협하는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토크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미개하고 사악한 이 세상에서 영원한 민주주의는 과연 가능할까?



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했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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