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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단 두목은 전 수사관이었다|「롤렉스」시계만 털어 온「김상사 파」범행 전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여름 외국 관광객을 비롯한 서울 시내 「롤렉스」팔목시게만 전문적으로 털어 온 1금 날치기단 김상사파의 두목 김병민(44·종로구 소격동125)이 경찰에 체포돼 이들의 범행 전모가 12일 드러났다. 그 동안 경찰이 이들로부터 자백 받은 고급 시계 날치기만도 46개-.
이들이 날치기한 고급 시계는 금딱지가 붙은 싯가 40여 만원의 「롤렉스」시계도 있었다.
7월말 경찰에 수배되자 초여름부터 꼬리를 문 「롤렉스」날치기 사건이 뜸해졌을 정도로 김상사 파는 교묘한 수법으로 시민의 나들이를 괴롭혀 왔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김 상사파의 조직은 아이러니컬한 것이었다.
이들이 조직된 것은 지난4월5일 수배중인 부두목 김재선(50·영등포구봉천동)의 제의에서 비롯됐다.
두목 김 상사와 부두목 김은 10여년 전 함께 소매치기를 잡으러 다니던 군경 합동 수사반의 한 팀.
김 상사는 당시 서울 시내 낙원동 소재 모 헌병대 조사계장으로 있었고 부 두목 김은 서울 시내 S경찰서 형사로 근무했었다.
당시엔 군복을 입은 소매치기가 심해 군경 합동으로 단속에 나섰는데 이때 둘은 한 조가 되어 안 사이였다는 것이다. 두목 김 상사는 곧 제대 강사를 시작하고 부 두목 김도 경찰서·S경찰국 등을 돌며 소매치기 담당형사를 하다가 10여년 전 그만두고 장사를 했으나 둘 다 실패. 빈 털털이가 된 끝에 만든 것이 소매치기 단.
69년 봄 이들은 소매치기를 잡던 입장에서 소매치기하는 입장으로 전락의 길에 나섰으나 3개월만에 두목 김 상사가 경찰에 잡혀 일단 헤어졌다가 다시 두 번째로 어울렸다는 것이다.
소매치기 수사관이었던 왕년의 경험을 살려 이들은 「롤렉스」팔목 시계에 착안 교묘한 2원조직을 갖추고 범행을 해왔다. 범행은 수사관 생활을 더 오래한 부 두목 김이 전적으로 맡고 두목 김 상사는 자금 지원·사고 뒷바라지 등만 맡기로 했다.
말하자면 부 두목 김이 현장 책임이고 김 상사는 자금 섭외 책인 셈. 현장 책인 부 두목 김은 먼저 피해자가 일꾼(시계를 나꿔채는 사람)을 분간하기 어렵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포함, 행동대를 10명으로 하는 대규모적인 조직을 했다. 자신이 앞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체 하면서 바람을 잡고 하갑술(32) 등 6명이 행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피해자를 둘러싸서 걷게 하고 일꾼인 박의춘(34) 등 2명이 재빨리 시계를 날치기하는 식의 교묘한 포진 법을 썼다.
실제로 이 포진 법은 거의 실수가 없었다.
지난6월1일 명동입구 지하도를 올라가다 「롤렉스」시계를 날치기 당한 윤민섭씨(26·풍국민교 교사)는 시계를 채이고 순간 재빨리 뒤돌아 섰으나 달아나는 사람이 없어 아무도 붙잡지 못하고 당했다.
재무부 김 모씨는 6월 초 삼각동 조흥은행 앞에서 아무도 못 찍고 당한 것이 분해서 새 「롤렉스」를 사 찬 뒤 『내 손으로 잡고야 만다』고 벼르며 같은 장소를 주의 깊게 다녔지만 10여일 뒤 또 당했으나 아무도 잡지 못했다.
이같이 교묘한 수법으로 이들은 주로 버스 정류장·서울시청·광화문 지하도·조선호텔 앞 등을 무대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만약 피해자가 놀라 소리를 지르면 앞에 섰던 부 두목 김이 반대방향을 가리켜 피해자를 『저기 도망친다』고 짐짓 뒤쫓는 체 따돌렸으며 발각되면 몸집이 좋은 변원조(32)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당이 10명이어서 하루 뛰는데 필요한 비용이 자그마치 2∼3만원. 이 돈은 두목 김 상사가 날마다 마련해 대고 장물아비 김규선(49)이 시계를 처분한 돈에서 원금과 1일1할의 이자를 붙여 받았다. 분배에서도 한몫을 차지한 것은 물론, 두목. 김 상사는 이렇게 해서 한달 수입이 적어도 7∼8만원은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그 동안 용케도 검찰의 수사망을 빠져 다녔지만 꼬리는 의외로 도 피해자에게 잡혔다.
이들은 지난 7월21일 저녁 신설동 노상에서 박해문씨(38)의 「롤렉스」를 나꿔채는데 성공했으나 부 두목 김만이 도리어 잡혀 시계를 돌려주는 과정에서 두목 김 상사 집의 전화번호가 드러난 것. 이때 김은 박씨에게 사정, 『시간여유를 주면 되돌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김 상사 집으로 전화를 걸어 『거기 가 있는 시계를 가져와』라고 말한 뒤 얼마 잇다가 가져온 시계를 주고 풀려났으나 박씨가 눈치껏 다이얼을 지켜보면서 번호를 외어 경찰에 알린 것이다.
경찰은 전파 국에 조회, 전화의 임자가 바로 김 상사임을 밝혀내고 계보를 파악 일꾼 박의춘 등 4명을 검거하고, 암투를 벌인 다른 소매치기 파의 전화제보로 천안에 내려가 있는 두목 김 상사까지 잡게 됐다.
경찰은 이들이 날치기한 시계가 중간 물주를 거쳐 뒷골목 시계포에서 신품처럼 개조해서 일류 점포의 진열장으로 흘러갔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 장물아비 김규선 등 나머지 6명의 행방을 추적중이다. <김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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