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연극 그 현실과 진로|연극인 세미나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신극60년을 맞은 한국 연극계는 공연은 많아도 예술은 없었다고 말해지고있다. 흔히 예술적 성공은 흥행적 성공과 혼동되고 있고 극작가는 많아도 질적 향상이 없이 여전히 창작극 부재를 면치 못하고있는 것이다. 「크리스천·아카데미」가 주최한 10, 11일의 「한국연극의 현실과 진로」「세미나」는 오늘날 우리 연극이 당면한 과제를 창작극을 중심으로 분석, 검토했다.
「작가의 상황」을 말한 이근삼 교수(서강대·극작가)는 신극 60년에 아직 창작극 부재·극작가 부재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극단들이 신진작가를 소학하지 못하고 또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극단들은 장기적 안목으로 젊은 극작가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계획이나 관심이 없으며 관객을 끌기에만 급해 외국의 대중적인 작품을 손쉽게 번역해서 공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국 작품 일변도의 상황을 차관만 들여와 허덕이는 부실기업체에 비유한 이 교수는 또 극단들이 파벌의식 때문에 다른 극단에서 쓴 작가를 기피하는 옹졸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서구 연극은 극작가 없이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연기하는 연극도 있긴 하기만 우리 나라에서는 민속극·가면극 등에 사가가 없는 것과 같이 대제로 작가는 경시돼왔다.
이 교수는 이러한 생각에서 극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을 극단이 마음대로 수정하고 며칠 동안의 연습으로 무대에 올려버리고 말며 극작가는 더 쓰고싶은 의욕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작가 부재 뿐 아니라 오늘날 한육에는 자기의 이론·철학·예술관이 뚜렷한 연출가나 연기자 또한 없다고 주장한 그는 극작가란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인 전체의 공동작업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점에서 각 극단의 창작극 발굴을 위한 장기 계획, 과다한 경쟁지양, 연극계의 정화와 친화, 소극장 운동의 확대 비평분야의 성장 등을 문젯점으로 들었다.
「비평의 위치」를 말한 이상일 교수(성대·비평가)는 비평이란 어떠한 예술행위에도 뒤따르는 것이며 우리 연극이 그 비평의 역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은 곧 한국 연극이 현재적인 좌표를 갖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작가들은 시대사회의 변화에 대한 감각과 그 지적형성, 혹은 내적 경험을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해 작품에는 일상성도 없고 문제성도 없기 때문에 앞서가는 시각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며 관객들에게 즐거운 축제가 되어야 할 연극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또 연극인들은 연극 부재를 경제적 문제·예술정책·관객부재 등 연극 외적인 요인에만 결부시켜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흥행적 수지만을 따지는 세속화로 창작극의 가능성에 대한 시도를 포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창작극의 점진적 시도가 없기 때문에 어느 날 의욕적인 연출가에 의한 실험은 훈련 과정을 거치지 못한 관객에게는 익숙지 못한 충격이 되어 그 실험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이 없는 작품과 연출, 세속적 생활인이 된 연기자나 미술·조명 등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위장 된 연극인의 안일 때문에 진정한 예술가에 의한 연극세계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는 연극 행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그 가치를 규정하는 논리적 비평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연극인들은 긍지와 열등의식이라는 이율 배반적인 감정을 갖기 때문에 비평을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인신공격의 수단으로 간주,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또한 타락한 비평이 연극을 너무 보호함으로써 그들에게 예술적 정진보다는 안일과 변명을 길러준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극의 역할」을 말한 김정옥 교수(중앙대·연출가_는 한국의 대학 극은 사실상 한국 연극의 주류의 상류를 이루어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학문적 연구보다는 예산을 소모하기 위한 행사적 연극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 극을 대학생들의 정서 생활과 교양을 넓히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대학극, 학문적 연구 활동의 연장으로서의 대학극, 직업적 극단으로의 발전과 예술적 영토를 넓히는 의미에서의 대학 극으로 나눈 그는 첫째 유형에만 그치고 있는 우리의 대학 극이 앞으로 좀더 지속적 연구 활동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극이 본연의 자세를 찾을 때 실제로 연극계들이 끌고 가는 중추적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며 침체한 한국 연극계의 탈출구와 활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