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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 여자대통령 노리는 콜롬비아 여걸「마리아·에우게니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세계 최초의 민선여성대통령을 노리고있는 여장부가 남미의「콜롬비아」 공화국에서 요즘 한창 기염을 토하고 있어 이 나라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당 년 37세의「마리아·에우게니아」여사.
그녀는74년에 실시될 이 나라의 대통령선거에서 필승의 신념 하에 맹렬한 선거준비작업을 하고있다.「인디라·간디」여사가 아버지「네루」의 후광을 받아 오늘의 인도수상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에우게니아」 여사의 정치역정도 그녀의 아버지「로하스·피니아」 장군의 그것에서 출발한다.
1819년 1백여 년에 걸친「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이 나라는 그 후 1세기간을 보수·자유양당간의 극렬한 대립으로 불안한 정전이 지배했다.
1948년 보수당이 정권을 잡자 자유당에 대한무차별 탄압을 가해 2백여 명의 자유당인사가 살해되고 20만명에 달하는 친 자유당 계 민중이 희생되는 대 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계속된 정국불안은 마침내「쿠데타」를 유발, 53년6월「로하스·피니아」장군이 영도하는 군부가 무혈「쿠데타」에 성공하여 54년「로하스」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로하스」정권의 계속된 부패와 철권정치는 다시 57년의 대 정치폭동을 초래하게되어「로하스」가「스페인」으로 추방되자「마리아·에우게니아」는 미국으로 단신망명의 길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녀의 본격적인 정치활동이 시작됐다.
「마이애미」에 정착한 그녀는 미국상원의원인「새뮤얼·디아즈」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이러는 사이에 보수당과 자유당은 장기휴전에 합의, 74년까지 4년마다 서로 번갈아 집권키로 하고 장관과 의원 수를 반분키로 하는데 성공했다.
국내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스페인」으로 망명했던「로하스」가 다시 귀국,「국민연합전선」을 조직하고「에우게니아」여사도 본국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도왔다.
이후「로하스」부녀가 영도하는「국민연합전선」은 나날이 당 세를 확장, 70년4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로하스」가 자유· 보수양당후보인「미사엘·파스트라나」에 맞서 치열한 선거전을 벌인 결과 당선이 확실시되었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콜롬비아」정부는「파스트라나」후보가「근소한 표 차」로 승리했다고 발표,「콜롬비아」는 내란일보직전의 혼미 속으로 전락했다.
이에 당황한 정부는「국가비상사태」를 선포,「로하스」지지파 1백여 명을 체포하여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상원의원이던「에우게니아」여사는 선거가 부정·불법이라고 정부를 규탄, 재개 표를 요구했으나 상원본회의장에서 발언권마저 봉쇄 당한 채 밖으로 끌려나오는 곤욕을 치르기까지 했다.
현재 그녀가 이끄는「국민연합전선」(ANAPO)은 이 나라의 수도「보고타」시의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녀는 실질적인「보고타」시장으로 시 행정을 지배하고있다.
그녀는 매월 4백명 이상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있으며 시골에서 올라와「보고타」시의 빈민굴을 찾는 유랑자들을 그녀의 ANAPO맹원이 선도하고있다. 74년의 고지를 향해 그녀는 인구 10만 이상 되는 24개시에 ANAPO조직을 이미 완료하고「칠레」의「아옌데」정권과 같은 사회주의노선을 추구할 것을 선언하였다.
국민사이에 현재의 그녀인기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면 74년 선거의 승리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이 나라 국민들이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응할 수 있겠느냐 의 문제가 남는데 의외로 여성후보에 대한 기피현상이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의회민주주의기반이 너무나 미약하고 고질적인 정국불안의 요소가 상존하고 있다는 약점 때문에 여성의 몸으로 정상에의 도전이 가능할 지에 대한 전망은 미지수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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