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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실버 전문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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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문영자 할머니가 4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에서 생태 학습을 나온 학생들에게 참나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김성룡 기자

숲생태지도자.문화유적해설사.주례전문인.실버택배원….

노인들의 연륜을 살린 신종 직업이 인기다. 특히 봄을 맞아 '봄특수'까지 일고 있다.

4일 서울 개포동 대모산 숲속. 벙거지 모자를 쓴 문영자(64) 할머니가 10여 명의 고교생에게 숲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었다. 손자를 셋이나 둔 문씨는 산과 공원에서 나무와 꽃 등 자연환경을 설명해 주는 숲생태지도자다. 문씨는 "숲 속에서 동심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더 젊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숲생태지도자는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과 재정을 지원하는 전국 30여 개 '시니어클럽'에서 1~2개월 동안 무료로, 또는 실비를 내고 교육을 받은 뒤 자격증을 딸 수 있다. 2002년 50명에 머물던 숲생태지도자는 지난해 611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강남시니어클럽 소속 숲생태지도자 20여 명은 한달 동안 대모산.우면산.양재시민의 숲 등지에서 10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최근에는 요청이 늘면서 5월까지 예약이 찬 상태다. 이 노인들은 1인당 월 20여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견학 과정을 유료화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서울 관악시니어클럽 숲생태지도자 구익서(61)씨는 "2년간 1주일에 세 번 관악산.보라매공원 등에서 500명이 넘는 어린이를 가르쳤다"며 "숲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면서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봄소풍 철을 맞아 궁궐 등에서 문화 유산의 의미와 유례 등을 설명하는 문화유적 해설사도 노인들에게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15명이 소속된 한국시니어클럽협회에는 하루 평균 30건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주례를 전문으로 서주는 '주례전문인'은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100여 명이 활동하는 한국주례전문인협회에는 지난달 본격적인 결혼시즌에 접어들면서 주례를 요청하는 전화가 1주일에 30여 건이나 쇄도하고 있다. 이 협회 은희권(76) 이사장은 "국제 결혼을 위한 일본어.영어 주례는 물론이고 장애인 수화 주례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교수 출신 등 주례 전문 노인과 계약을 하고 있는 전문업체들만 30여 곳에 이른다. 한국주례인협회 최영애 실장은 "주례사가 좋고, 사례비와 선물을 챙길 필요 없이 부담 없는 가격(10만원대)이어서 예비부부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인기 있는 주례전문인은 한 달에 10여 건의 주례로 100여만원을 벌고 있다고 한다.

노인들이 택배에 나선 경우도 늘고 있다.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65세 이상)로 탈 수 있어 일반 택배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배달해준다는 장점 때문이다. 실버택배를 전문으로 하는 U택배의 이재승(61) 팀장은 "한 달에 30만~40만원 넘게 벌고, 출근할 곳이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고 밝혔다.

백일현 기자<keysm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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