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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주인은 젊은 사람인대 가족이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기에 <부인네들은 다 어디 갔느냐>한즉 산으로 일하러갔다는 것이었다. <이곳은 재목도 많은데 어찌 집을 이렇게 하고 사느냐>하니 평안도사투리로<그깟 우리가 여기 와서 되놈의 화전이나 붙여 먹으면서 집을 잘 지어 무얼 합네까. 우리도 도로본국으로 돌아가겠소>하면서 장구히 살 계획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 글은 황해도인 최명식이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신천지 개척을 위하여 간도에 갔다가 견문한 1909년쯤의 서간도 이민의 한 모습이다.
「오죽하면 정든 고향을 떠나겠는가」이런 말은 옛날 애새끼는 배고파 우는데 바가지를 차고 곡간 같은 완행열차에, 시달리던 북간도이민에게나 쓰여지던 옛말이 되었다. 학사님이 갱부를 지원하고 수백, 수천만원의 집을 팔아 농부 되기를 원하여 떠나는 세상이 되었다.
근세 우리의 이민은 영세농민, 노동자의 간도·연해주·미주 등지로의 이주로 비롯되었는데 미주이민중의 일부는 노예매매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 후 을사조약 한일합병에 이르러 애국지사의 해외망명이 격증하였다. 그리고 오늘의 이민은 또 다른 성격을 띠고 있는 듯하다.
오늘의 이민현상을 사치성 패배적·망국적이니 라고 간단히 규정짓기는 힘든 것 같다. 이민의 원인은 인구과잉 사회불안 천변지이 등 내적 요인에 있는 것은 물론이나 현대에 이르러는 이기주의·좁아진 세계·국제교류라는 현 사회의 외적요인도 생각하여야 한다. 물론 오늘의 이민이 원시시대 우리조상의 이동, 「그리스」인의 「이오니아」지방진출, 「유럽」인의 신대륙이주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그 원인에 있어서도 복합적일 것이나 1차적으로는 국내사회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해방 후 북한사회에서 「로스케」가 『엄지손가락은 남쪽으로 도망가고 둘째는 잠자고 새끼손가락들이 날뛴다』라고 하였다는 야유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해당된다면 큰 일이다.
이민은 「못사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시국에 이르렀다는 것은 현실 문제이다. 이 좁은 땅에서 사람도 많고 말도 많고 서로 발버둥쳐야하니 넓은 신천지로 이민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럴 때마다 옛 고구려의 영토와 신라의 해외발전을 생각하게 된다.
그와는 반대로 1등 국에서 3등 국민노릇 하느니 3등 국에서 1등 국민이 되겠다는 생각은 내 고장만을 사랑해 보려는 고식적 사고방식인지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여기에 이르면 안도산의 「거국가」의한 귀절이 떠오른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지금 너와 작별한 후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널 때도 있을 지요 「시베리아」 만주들로
다닐 때도 있을지나 나의 몸은 부평같이
어느 곳에 가있든지 너를 생각 할 터이니
너도 나를 생각하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최영희<국민 편찬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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