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우연에 잡힌 카빈 강도-탈영병 장현천 체포에서 본 경찰조사의 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6개월 동안에 개머리판 없는 카빈으로 강도질을 해오던 탈영병 장현천(26·절도전과5범)과 김청수(24·특수절도 등 전과2범) 김희수(26·절도전과1범)등 3명이 경찰에 잡혔다. 이로써 지난 6월 이후 서울 삼선동·명륜동·석관동등 7군데에서 잇달아 일어났던 카빈 강도사건이 한꺼번에 풀렸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주먹구구식 경찰수사에 경고를 주었다. 이 사건을 해결한 실마리는 과학수사가 아닌 한 경찰관의 우연한 불심검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17일 하오3시30분쯤 서울 청량리 대왕 코너 앞에서 청량리 경찰서 소속 이환세 순경(36)이 우연히 김청수를 불심 검문했다가 허리춤에서 개머리판 없는 카빈을 꺼내 반항하는 김을 격투 끝에 붙잡았다. 경찰은 김을 추궁 끝에 지난8일의 마장동 강도의 자백을 받아 주범 장과 공범 김청수까지 검거, 이들의 범행전모를 밝혀낸 것이다.
육군 모 부대 상병인 장은 지난6월 휴가를 나와 처음 범행을 시작했다.
장은 부대에서 카빈1정 실탄1백여발 수류탄1개를 훔쳐 나와 제기동 삼선동등 두 곳서 금품을 털었다. 장은 첫 범행에서 재미를 보자 7월4일 탈영, 면목동 1031 무허가 하숙집에 아지트를 두고 강도로 본격화했다.
7월14일엔 하오1시 명륜동에서 범행에 실패하고 도주, 버스로 장위동에가 하오4시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던 송조여씨(여·44·석관동338의323)에게 공포 한발을 쏘고 돈을 뺐으려다 미수에 그치고 달아나는 등 하루에 두번이나 범행을 저질렀다.
석관동 사건이 있었던 때 마침 살인강도범 박원식이 대구에서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나 도주하고있었기 때문에 박의 출현으로 오인돼 서울시경 산하 전 경찰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장은 8월 초순 우연히 김희수를 만났다. 시골서 국민학교만 나와 무작정 상경, 떠돌이 생활을 한 장은 국민학교 3년을 중퇴한 전과범 김과 쉽게 어울렸다.
한달쯤 지나 김은 평소 알고있던 김청수가 탈영하자 한패로 끌어들였다.
탈영병이란 처지로 인해 김청수는 장의 하숙집에 함께 은신하면서 일당이 됐다.
이들은 대담하게 대낮에 범행했다.
은행주변에서 서성거리며 대상을 골랐다. 주로 현금을 찾아 나오는 여자를 집까지 미행, 그럴듯한 이유로 대문에 들어서면서 카빈을 들이댔다.
명륜동에선 국세청직원이라 사칭했고, 마장동에선 미싱 장수를 가장하고 접근했다.
카빈은 개머리판을 없애고 총열을 잘라내 길이50cm정도. 가방이나 종이봉투에 넣거나 검은 보자기에 싸들고 다녔고 때론 상의 속에 지녔다.
범행이 끝나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남산·장충공원 등에 숨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밤늦게 하숙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군부대에서 총기를 훔쳐낸 탈영병이었고 탈영전후 같은 수법의 사건이 빈발했는데도 경찰이 범인을 못 잡았던 것은 군경의 협조가 긴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이 사건을 통해 군부대의 무기관리 소홀이 드러났다.
모든 강력 범죄에서 무력했던 경찰수사의 맹점이 이들의 수사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먼저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려는 수사보다는 우야무야로 얼버무려 미제사건으로 넘기려는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 제기동 동광약국 사건이 있자 범행에 사용한 흉기가 모의 기관단총 같다는 피해자의 진술만 듣고 강도가 아닌 공갈로 처리하려했던 경우가 좋은 예이다.
다음 강력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각 경찰서간의 협조가 제대로 안돼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들이 석관동에서 범행 후 도주로는 이문동∼중량교∼왕십리∼남산. 경찰은 불확실한 목격자들의 말을 안일하게 추리, 엉뚱한 방향으로 뒤쫓기만 했고 각 경찰서에 수배를 하는 등 긴급조치가 없어 범인들은 불심검문조차 받지 않고 도보로 활보했음이 조사결과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몽타지 사진수배도 이번 사건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동일 범에 대한 피해자·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릴 때 이 진술을 토대로 만든 몽타지 또는 판단이 전혀 방향을 그르쳤다. 석관동사건과 마장동 사건은 같은 수법의 범행이었음에도 주범의 인상이 틀린다는 목격자 진술 때문에 경찰은 다른 범인의 소행으로 단정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경찰수사는 과학수사를 외면하고 우연성에 의존, 수사본부를 설치하긴 했으나 단서도 못 잡고 흐지부지 철수했었다.
불심 검문으로 이 사건이 풀렸다는 것은 앞으로 이 검문검색이 더욱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교훈을 남긴 반면 이번 사건의 해결에 경찰수사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기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