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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역사교과서, 논쟁 과정이 치유의 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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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5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고교 한국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해 “국정 교과서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새 역사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학계와 정치권, 시민단체까지 좌·우로 나뉘어 ‘역사 전쟁’이 벌어지니 아예 국정 교과서로 가자는 의견이다. 더 이상 저급한 수준의 소모적 논쟁으로 힘을 빼지 말자는 취지도 담겨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국정 교과서 제도를 시행 중인 나라는 북한을 비롯해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등이다. 대부분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사실 한국은 해방 후부터 1972년까지 검·인정 제도였다. 유신체제(72년 10월)가 등장하면서 이듬해 국정 교과서제로 바뀌었다. 민주화와 국제화를 거치며 “획일적인 국정 교과서로 인해 학생들이 다양하게 열린 사고를 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검·인정 제도로 바뀌었다.

 국정 교과서의 검·인정 제도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권위주의 시대에서 국제적·다원적·창의적 시대로 흘러가는 지구촌의 패러다임 이동과도 궤를 함께한다.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국정운영의 주요 축으로 내걸었다. ‘나라에서 정한 대로 역사를 바라보라’는 식의 국정 교과서를 통해선 창조의 씨앗을 뿌리기 힘들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각도와 의견이 충돌하며 도출되는 법이다.

 그간 벌어진 역사 교과서 논쟁은 수준이 저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파적 이기주의와 학계의 밥그릇 싸움도 깔려 있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좌·우 간 이념 논쟁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몸살이 됐다. 그럼에도 국정 교과서로 되돌아가는 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상처가 깊다. 좌우 대립, 한국전쟁, 남북 분단과 민주화 과정의 아픔이 있었다. 역사의 상처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도 남북전쟁(1861~1865년)이 있었고, 프랑스는 프랑스혁명(1789~ 1794년), 영국은 명예혁명(1688~1689년) 등을 거쳤다. 역사적 논쟁의 격렬함은 역사가 남긴 상처의 깊이와 비례한다.

 무혈혁명의 영국보다 남북전쟁에서 군인만 61만 명이 전사했던 미국의 상처가 훨씬 깊다. 이들 나라는 ‘역사를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를 놓고 오랜 세월 치열한 논쟁을 치렀다. 그걸 통해 역사의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논쟁의 과정이 결국 치유의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논쟁은 큰 틀에서 조망해야 한다. 역사 논쟁은 불필요한 소모전이 아니라 치유와 성숙을 위한 통과의례에 가깝다. 국정 교과서 회귀는 그런 성장통을 거부하는 일이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