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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이주 그 10년의 실태 (하)|연고 초청의 문젯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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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계약 이주 (농업 이민) 시책의 실패로 국민의 해외 송출은 68년을 고비로 고용 계약·연고 초청 이주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많은 지식층·저명 인사들의 해외 이주의 기회가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62년에서 65년까지의 이주 대상국으로서는 중남미 지역이 「붐」이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등이 주요 대상국이었으나 68년을 고비로 한물가고 지금은 미국과 「캐나다」 이주의「붐」이 일고 있다.
이 두 나라는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절차가 비슷하며 이 두 나라로 가는 사람들은 90%가 우선 순위 이주의 제5순위 (시민권을 가진 자의 형제 자매)를 활용하고 있다.
작년에 미국으로 간 허영숙씨 (고 이광수씨 미망인)의 경우를 보면 우선 자녀들 중 한 사람을 유학 보내 공부시키고 현지에서 결혼토록 하여 영주권을 얻은 뒤 형제들을 차례로 데려가고 나중에 부모를 초청해 간 것이다.
현재 저명 인사들의 이주 방법도 대개 이와 같다. 김상돈씨·정광현씨의 경우가 이것이다.
용산 교회의 목사로 있다가 「캐나다」로 간 이학인씨도 이와 똑같이 시민권을 가진 자녀들의 초청에 따라 이주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의 해외 이주는 10∼15년 전의 유학에서부터 장기적인 안목 아래 진행되었다고 분석된다.
한국 사람 가운데서 미국의 우선 순위 이주의 제3순위로 이주해 간 사람은 드물다.
현재 김은수 교수 (연세대 식물 세균학)가 이 순위에 따라 수속하고 있는데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 3순위는 미국에서 필요로 하는 학문·기술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인 만큼 다른 순위에서와 같이 연고자의 초청장 등이 필요 없고 다만 우리 나라에서 출국 허가만 해 주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
69년까지의 초청 이민은 대개가 국제 결혼한 한국 여인이 친정 식구를 데려가는 것으로 집약되어 왔다. 그것이 작년부터는 유학생으로 공부하러갔다가 돌아보지 않고 영주권을 얻은 사람들이 부모 형제를 초청 이주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연고 초청 이주가 결국은 부유층·지식인들의 해외 이주 창구가 되었는데 이 같은 추세는 장차 늘어갈 것으로 보이고 있다.
특히 해외 취업자로 나간 1천3백명의 의사, 체류로서 나간 4만5천여명의 유학생과 취업자들 중의 많은 부분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 일단 이들 중 상당수가 영주권을 얻은 것으로 본다면 이들이 형제·자매·부모를 초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따라서 부유층·지식층의 이주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까지 보사부는 이주자에 대한 계층 분류를 하지 않아 통계 숫자는 없으나 70∼71년 9월까지의 이주자 중에는 고등학교 교사·대학교수·실업인이 많고 공무원도 간혹 끼어 있다. 이들을 출국 형태별로 보면 우선 순위 ⑤순위에 의한 것이 으뜸이고 다음이 ⑦순위, ⑥순위, ③순위, ④순위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도피성 이민」의 인상이 짙은 2중 국적 소유 이민이다.
국내에 기업체나 튼튼한 생활 기반을 가진 사람이 자녀들을 유학 보내 영주권을 얻게 한 다음 자신도 해외 이주로 일단 출국, 현지에서 영주권을 얻은 뒤 다시 들어와 기업체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1년에 한번씩 출국, 교포 여권을 확인 받으면 되는 법을 악용하여 생활 기반을 국내에 갖고 이주 아닌 이주로서 외국인 행세를 하는 것인데 이들에 대한 실태는 법무부의 출입국 「카드」가 개인별로 되어 있어 조사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보사부는 뒤늦게 이 같은 도피성 이주자를 막기 위해 지금까지는 1천만원 이상의 재산 소유자에게만 부과하던 재산 처분 계획서를 이주 신청 과정에서 받고 허가하기 앞서서 재산 처분 확인서를 받도록 하여 이주자가 다시 돌아와 두고 갔던 재산을 찾아 생활 기반을 닦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해외 이주 시책에 모순되는 점이 없지도 않다.
현재 우리 나라는 해외 이주자가 소지할 수 있는 외환액은 성인은 1인당 3백「달러」, 어린이 150백「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5인 1가족 이주하는 경우 (어린이 2명 있다면) 1천4백「달러」를 바꿀 수 있다. 이 밖에 물건을 갖고 갈 수 있으나 현금은 가져갈 수 없게 되어있다.
따라서 재산이 있는 사람은 전 재산을 처분한대도 현금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점에서 처분하지 않고 친척 등에 맡긴 채 두고 가는 경향이 생기고 다시 돌아와 생활 기반을 닦는 길을 택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서 최초의 이주자는 학벌·재산의 면에서 「귀국 이주」라 할 수 있도록 호화판을 이루는 경향이 지적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교포들의 경제 활동은 학벌 등을 크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외무부에서 70년6월말 현재로 조사한 재외국민 현황에 따르면 교민 수는 모두 62만8천45명, 체류자는 4만4천6백15명이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재일 교포가 58만4천7백23명 (체류자 1만5백18명) 아주 지역 1천1백26명 (체류자 1만5백50명) 북미 지역 3만6천2백80명 (1만5천3백68명) 구주 지역 4백10명 (7천3백22명) 가·중동 지역 1명 (5백52명) 중남미 지역 5천5백5명 (3백5명) 등이다.
이들 해외 이주자들 중 아주 지역 이주자들의 직업은 상업·「서비스」업으로 크게 나뉘어지고 있고 미주 지역은 「서비스」업·상업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중남미 지방은 제조업·상업·농업·「서비스」업으로 되어 있어 결국 해외 이주자의 대부분이 상업과 「서비스」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 나라의 해외 이주 사업을 보면 미국의 경우 자유중국·「필리핀」에 떨어지는 정도로 부진한 상태인데 말썽만 크게 빚는 꼴이다.
개척자로서 낯선 땅에서 일할 수 있는 굳센 한국인 진출을 돕고 귀족 망명의 인상이 깊은 사람들의 이주를 막을 새로운 시책이 아쉽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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