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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지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시골 초가의 지붕이 벗겨지고 그 대신 「시멘트」기와나 양철 지붕이 씌워진다. 한국에 처음 나온 서양 선교사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초가집을 보고 저것이 무엇이냐 물으니 「돼지우리」라고 대답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까맣게 그슬린 코딱지 같은 초가집을 외국인에게 보여 주고 않은 심정은 다 마찬가질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초가 지붕 개량 운동이 그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개량 지붕 집은 털을 뜯긴 수닭같이 꼴불견이고 도무지 우리 산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연전에 국민학교 사회과 교과서 심의 회의에서 어떤 분이 「우리 집」의 그림이 꼭 일본식 집 같다고 하였는데 그 집은 면사무소나 군청 소재지에 흔히 있는 집으로 널찍한 뜰에「펌프」가 있고 닭과 개가 놀고 퇴청 마루가 있고 양 (왜) 기와를 얹은 집이었다. 이 집이 일본식으로 보이는 것은 지붕의 인상에서였다.
소위 왜기와집이나 양철집은 우리 고유의 건축이 아니라 일정때 일본인들이 이 나라에 짓기 시작한 것이다. 일인들은 면사무소 소재지 등에 정착하여 사냥한다고 총을 메고 다니며 촌사람을 위협하고 잡화상을 하는한편 고리대금 놀이를 하여 순박한 농민의 전답을 약탈하였는데 그네들의 집이 양철 지붕이나 왜기와집 이었다. 이 집들이 편리하여서인지는 모르나 그래도 초가집 사람보다는 개명한 사람의 집으로 여겨진 것 같다. 이리하여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이런 집이 나온다.
우리의 자연에는 우리의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의 곡선이 그대로 융합되고 조화된다. 그리 높지도 않은 산을 등지고 남향 밭에 옹기종기 초가가 모여 있는 속에 몇 채의 기와집이 서있고 문전옥답에 시냇물이 흐르는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런데 우리 지붕이 없어지고 족보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곡선의 지붕이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치고 있다. 우리의 경제력과 현대화를 위하여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런 이야기가 옛것에 대한 지나친 감상주의자의 말이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기왕이면 개량 지붕에 대해서 그 모양 등 생각할 바가 많은 것 같다.
우리 이조시대의 옷장 등 목기류가 편리하다고 싸구려 철제 「캐비니트」와 바뀌어졌는데, 우리가 버린 그 목기류는 「파리」 등 구미에서 고가로 홋가 되는 미술품으로 변하였다. 이제는 다시 그 목기류들을 찾아올 길이 없다.
이제 지붕을 잘 못 고쳐 놓으면 다시는 옛 아름다움을 되찾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최영희 <국사 편찬 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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