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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총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중공의 화해를 향한 접근, 중공의 「유엔」가입 등으로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한국이차지하고 있는 좌표가 동요함에 따라서 국민총화로 국난을 극복해 나가야할 필요성이 매우 높아져가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동서고금에 통하는 격언이지만 국가 대외적으로 위기에 부딪치게 됐을 때 이 격언은 유달리 박진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총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실제로 국민총화를 이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국민의 각계각층이 총화단결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바람직한 총화를 이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하면 국민총화는 한낱 구두선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총화를 이룩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의 제시를 매우 중요시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바 그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헌법상 보장돼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모든 사회집단의 자율성을 회복해 나감으로써 치자-피치자간에 자발적인 협력관계수립을 촉구해 나가야 한다. 『덮어놓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총화론은 기실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런고 하니, 하늘아래 전혀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받은 인간은 존재할 수 없을뿐더러 민주적인 의사소통이 행해지지 않는 단결이란 어디까지나 명목만의 거짓 단결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한 의미의 국민총화란 모든 국민이 자유와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고, 어느 누구도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아니하며, 모든 사회집단이 고도의 자율성을 지니게 될 때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압력을 가지고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압박과 예속이 있는 곳에서는 사태가 표면적은 평온한 것처럼 보인다하더라도 그 사태는 조만 간에 파국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총화이고 단결이지, 결코 국민의 맹종을 강요하는 총화가 아님을 강조하고싶다.
둘째로, 부정부패를 숙청하고 국가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구현케 함으로써 총화의 정신적인 바탕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무릇 부정하고 부패한자들이 잘 살고, 도리어 정직하고 성실·근면한 사람들이 잘 못사는 사회에서는 인화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정부패를 미워하는 심정은 선을 갈구하는 인간성의 발로이기 때문에 이 심정상의 욕구불만을 충분히 풀어주지 아니하고서는 사회의 올바른 조화도, 진보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정부당국자는 부정부패를 숙청하는 작업을 크게 벌이고 있지만, 송사리급에 속하는 부정분자, 부패분자의 숙청으로 그것이 국민의 정의감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착각이다. 악한 자는 반드시 응징되고 사회적으로 추방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야만 국민사회의 기강은 바로 잡힐 수 있는 것이요, 또 이 기강을 명맥으로 삼아 총화단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국민총화는 올바른 기강을 충심으로 한 민주적 단결이지, 결코 예속적인 단결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로, 소득분배의 공정화를 촉구하고 빈부간의 격차를 줄여나감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 노리는 「계급투쟁」이 벌어질 수 있는 조건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전체가 가난하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전체로서의 가난은 도리어 단결과 분발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국민 중 소수자가 지나치게 잘살고 다수자가 빈곤에 허덕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공산주의가 침투할 수 있는 절호의·기반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점을 각별히 명심하고 정부의 제반시책을 가지고, 소득분배의 공정화를 촉구해 나가야 할 것은 물론, 우리 사회가 약육강식의 시장이 되지 않도록 세밀한 배려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정책을 통한 빈곤의 추방이야말로 우리가 공산주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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