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 이즈 로스트’(원제 All Is Lost, 7일 개봉, J C 챈더 감독)의 등장인물은 사실상 한 명이다. 홀로 요트를 타던 나이든 남자가 조난당해 사투를 벌이는 얘기다. 대사도 몇 마디 없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입을 꽉 다문 남자의 움직임과 눈빛, 그리고 폭풍우다.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를 빨아들인다. 주연은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로버트 레드퍼드(77). 1970~80년대 서부극 ‘내일을 향해 쏴라’(1969), 로맨스물 ‘위대한 개츠비’(1974), 사회드라마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등등 종횡무진 활약한 그다.
그는 ‘올 이즈 로스트’에서 주름진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곧 시작될 미국 내 각종 영화시상식서 남우주연상 후보지명도예상된다. 1980년대 초 미국 최고 독립영화축제 선댄스영화제를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한 그를 최근 뉴욕에서 만났다.
- ‘SOS’‘도와줘’ 등등 대사가 별로 없다. 시나리오를 처음 대했을 때의 소감이라면.
“두려움을 느꼈다. 감독이 제정신인지 아닌지 만나봐야겠다 싶었다. (웃음) 만난 지 10분만에 내가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배우로서 완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대화나 내레이션, 특수효과도 없이 순수한 영화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실제 항해를 해본 경험이 있나.
“아주 가벼운 정도…. LA에서 자라 바다, 수영, 서핑 이런 걸 항상 즐겼다. 깊은 바다로 간 적은 없고 해변에서 논 정도다.”
- 이름도, 과거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주인공을 어떻게 연기했나.
“캐릭터에 대한 정보가 아주 조금은 있다. 우선, 이 남자는 노트를 쓴다. 아마도 가족에게 쓰는 듯하다. 둘째, 뭔가에 굉장히 미안해 하고 있고 셋째, 뭔가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혼자라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안 그러면 너무 복잡해진다.”
- 실제로 생사를 오갔던 경험은.
“7년 전 아내하고 작은 제트기로 이동 중이었는데, 갑자기 엔진 두 개가 모두 멈췄다. 고도가 4만1000피트에서 8000피트로 내려갔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엔진이 들어왔다 나갔다 반복하더니 결국 작동됐다.”
- 영화에선 허리까지 물이 찬 상황에서도 면도를 하는 여유를 보여준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진짜 폭풍 같았다. 온몸이 계속 젖어 있어 옷도 신발도 다 축축하니 우울함의 무게가 더해졌다. 그게 가장 힘들었다.”
- ‘라이프 오브 파이’(2013, 리안 감독)도 바다에서 살아남는 얘기인데.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비교하기가 힘들다. 촬영이 마무리될 즈음에 ‘라이프 오브 파이’가 나왔다. 두 영화가 너무 다르고, 우리는 특수효과나 동물도 없어서 괜찮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 배우로서 상을 받는 것에 아직 관심이 있나.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통 사람들’(1981)로 감독상을 받았고, 연기상은 ‘스팅’(1973)으로 남우주연후보에 그쳤다).
“없다. 상은 언덕 위로 올라갈 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덕 꼭대기에서는 아닌 것 같다.”
- 주인공이 길을 잃는다는 점에서 철학적 질문이 담긴 영화 같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곤 한다. 어디에 닻을 내릴 수 있는 지, 발을 디딜 수 있는지. 답은 없다.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그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뉴욕=NY중앙일보 이주사랑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봉석 영화평론가):거대한 자연 앞에 홀로 선 인간은 초라하지만 위대하다. 노인의 생존을 위한 끈질긴 노동을 보며 가슴이 숙연해진다.
★★★☆(정현목 기자):시련이 거세질수록 노인의 생존 의지도 더욱 굳건해진다. 인간은 결코 쉽게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망망대해에 홀로 조난당한 노인
대사·특수효과 없이도 화면 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