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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대한 편견 깨겠다, 한국이 도와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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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엔에이즈계획 미셸 시디베 총재(오른쪽)와 한영실 특별고문. 이들은 “우리 마음 속의 편견을 없애는 게 에이즈 퇴치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말리 출신인 미셸 시디베(61) 유엔에이즈계획(UNAIDS) 총재는 열두 살 등굣길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살지를 정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 아침마다 나와 있는 정신지체아에게 다른 친구들이 돌을 던지는 걸 보면서다. 돌을 맞아 아플 텐데도 함박웃음을 짓는 그를 보면서 결심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학교 졸업 후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에 들어가 아동·여성 문제에 매진한 이유다. 유니세프 등 여러 유엔 기구에서 일하다 2001년 유엔에이즈계획에 합류했다. 2009년 반기문 사무총장은 40년 경력의 ‘유엔통’ 시디베를 에이즈 퇴치 해결의 최일선에 서는 총재 자리에 임명했다.

 최근 방한, 지난달 25일 중앙일보와 만난 시디베 총재는 12세 당시 기억을 되새겼다. “돌을 던진 아이들도 마음이 비뚤어져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대응해버린 거예요. 어느날 장애를 가진 그 아이가 안 보이길래 수소문했더니 정신병동에 묶여 있더군요.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간호사에게 그의 ‘친구’라고 얘기하고 면회를 갔더니 환하게 웃어주더군요. 실제로 그날부터 우린 친구가 됐어요.”

 시디베 총재는 에이즈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했다. 사람들이 에이즈를 피하는 건 편견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목표는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을 친선대사로 위촉하고 한영실 전 숙명여대 총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해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시디베 총재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은 그 저력을 바탕삼아 에이즈 퇴치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모태 감염이 많아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고, 그 아이는 다시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에게 좋은 일자리가 주어져야 하고, 부모들이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는 유엔에이즈계획 예산 문제로 1인당 에이즈 치료비가 연간 80달러(약 8만4000원)로 줄어 들어 힘들다고 했다. “반 총장이 많은 지원을 합니다. 에이즈가 문란한 성생활이나 동성애로 비롯된다는 잘못된 편견을 없애는 데도 신경을 많이 쓰시죠. 2011년엔 말리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14년간 복역 중이던 남성을 반 총장이 정부를 설득해 석방시켜 주기도 했어요.”

 2015년을 기점으로 에이즈에 새로 감염되는 이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시디베 총재의 계획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이 선언문을 통해 지지를 표명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서명한 정상 선언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아직 미미한 편이다. 한영실 특별고문은 “유엔에이즈계획이 추진 중인 에이즈 확산 방지 프로그램에 일본을 포함한 29개국이 지원을 하고 있는데 한국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미들파워(middle power·중견국)를 지향하는 한국이 이런 글로벌 이슈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에이즈는 주사나 수혈 과정의 작은 실수로도 감염될 수 있는 만큼 우리 마음 속 편견을 없애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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