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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요즈음 장발족이 길가에서 단발되는 것을 보니 옛 단발령이 생각난다. 갑오경장 때의 일이다. 일본의 배후조종은 있었으나 새 이상에 불타는 개화주의 청년정치가들은 새로운 사회제도와 정치기구를 법령으로 반포하고 실천으로 밀고 갔다. 그리고 명성황후의 살해란 큰 변고가 있었는데도 상투를 깎으라는 단발령을 반포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침내는 전국에 항일의병 일어났던 것이다.
단발령은 근대화라는 갑오경장의 마지막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왕과 대신이 솔선 모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단발은 사회제도라기 보다는 수 천년 내려오는 풍속이기 때문에 어떤 개화정책 보다도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단발은 즉 친일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유생들은 『내 머리를 베어갈지언정 상투는 못 깎는다』고 버티었다. 경무사 허진은 순검을 거느리고 길을 막고 행인의 상투를 깎는가하면 인가를 수색하기도 하였다.
세상 돌아가는 일도 모르고 한양에 올라 왔던 시골 선비가 순검에 붙들려 상투를 깎이고는 상투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통곡하며 집에 돌아가 조상신주 앞에서 『신체발부는 수지부모하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 이온데…』하며 불효자식 됨을 읍소하였다. 또한 길에서 붙들린 사람은 상투만 잘렸기 때문에 머리털이 흩어져 내려와 마치 장발승 같은 웃지 못할 모습이 되었다.
학부대신 이도재는 단발을 반대하는 소에서 『단발의 논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단군 기자이래 편발의 속이 상투로 변하여 우리 백성은 모발을 아끼는데 하루아침에 이를 깎으면 4천년의 풍속에 큰 혼란이 올 것이며 민심은 흉흉하여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라 하고 『훌륭한 임금은 그 「명」으로 다스리지 않고 그 「실」로 다스리며 민을 교화하는 일은 그 「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심」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단발을 하여야만 개화가 되는가는 의심스럽다. 일전 인도 축구선수의 상투를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내 것의 고집과 재발견은 개화에 앞선 또한 개화 후에도 기본정신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단발은 같으나 예는 고유의 상투를 자르고 개화하자는 것이고, 지금은 외래의 장발을 잘라 사회 기풍을 바로잡는데 있다. 어딘가 같은 것 같으나 또한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어느 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냐가 잘 알 수 없는데서 오는 혼란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 한가지 공통점은 옛날도 부인과 동자의 머리를 깎지 않았는데 지금도 여성과 어린이는 그 대상이 안된 것이다. 이는 사회 기풍과 미는 구별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은 「명」이나 「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실」과 「심」에 있다는 것이 다시 명심된다.
※이 주일부터 「파한 잡기」 필진이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강신원<성대교수·국문학> ▲김재황<서울대 공대교수·조선학·공박> ▲최영희<국사편찬위 사무국장·국사> ▲한철하<장로회신대 교수·신박>
최영희 <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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