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참여재판 대상 범죄 늘릴 때 … 선거사범 포함 여부 확인도 안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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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꼼수(나는 꼼수다)’와 안도현 시인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기존 법리와 달리 무죄가 선고되면서 배심원 평결의 편향 논란이 일었다. 국회는 “법원이 이런 사건을 참여재판에 회부했기 때문”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하지만 선거범죄가 국민참여재판 대상에 포함된 건 국회가 법안심사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결정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당시 제출된 의원입법안과 국회 본회의·법사위·소위 속기록을 확인한 결과다.

 2008년 1월 첫 시행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참여재판법)’은 당초 5년간 시행 후 대법원 산하 국민사법참여위원회에서 문제점을 보완해 최종 형태를 마련키로 예정됐었다. 그러나 2011년 하반기 6개 개정안이 의원입법 형식으로 잇따라 발의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 중 하나에는 참여재판 대상 범죄를 대폭 늘리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기존 법률은 주로 강력범죄나 뇌물, 배임수재 등 대상 범죄를 일일이 지정하는 방식이었으나 이를 ‘사형·무기 또는 단기형이 1년 이상인 범죄’로 늘리자는 것이었다. 이처럼 형량이 높은 범죄는 지방법원 합의부가 재판을 맡는다.

 법안에 대한 심사는 2011년 11월 14일 국회 법사위 제1법안심사소위가 맡았다. 오전 10시41분, 박준선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장이 회의 시작을 선포했다. 한나라당 김학재·노철래 의원, 민주당 박영선·이춘석 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1시40분쯤 참여재판법 개정안 6개가 안건에 올랐다. 대상 사건 확대를 담은 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박 위원장은 법원과 검찰에 의견을 물었다.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현 대법관)은 “대상 범죄 확대는 좋은 일”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형량이 높은 사건 외에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 반드시 합의부에 배당해야 하는 다른 사건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길태기 법무부 차관(현 대검 차장)도 “ 특별한 이의가 없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10여 분 만에 법원 측 의견을 참고해 최종 개정안(최종안)을 만들기로 했다. 결국 참여재판법 논의는 40분 만에 종결됐다.

 하지만 최초 개정안과 최종안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 공직선거법상 주요 선거사범에 대한 형량은 2~3년 이하 징역형이나 벌금형으로 비교적 낮지만 합의부에서 재판하도록 법원조직법에 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회의 참석자 중 그 문제에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결국 합의부 배당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이, 선거사범도 참여재판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후 최종안은 상임위와 국회 본회의에서도 추가 논의 없이 그대로 통과됐다. 지난해 7월 1일 발효됐다.

 나꼼수와 안 시인 재판에서 배심원 평결의 편향 논란이 일자 국회는 “법원이 이런 사건을 참여재판에 회부했기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법원 관계자는 “법에 그렇게 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법관이 임의로 배제하더라도 항고·재항고 절차가 있기 때문에 피고인이 강력하게 원할 경우 참여재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개정안을 발의했던 의원실 소속 보좌관은 “경제 범죄를 중심으로 참여재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이를 반영한 법안을 발의했었다”며 “당시 소위와 상임위는 물론이고 최종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선거법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참여재판법을 다시 개정할 때 선거법 위반 사건 등의 배제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법참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 로스쿨 신동운 교수는 “선거사범을 포함해 정치적 사건을 참여재판으로 진행할 때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요즘 논란의 불씨가 됐다”며 “현재 법무부에서 새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내년 초 국회에서 다시 다룰 것인 만큼 그 전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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