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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맞춤셔츠 전문점 '새빌로우' 월 8000만원 매출 비결 뭡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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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일 오전 새빌로우의 최호성(37) 사장은 1m50㎝ 길이 줄자로 30대 남성고객의 신체 치수를 재고 있었다. 하금테 안경(윗부분은 뿔테이지만 아랫부분은 금테 형식인 안경)을 쓴 최 사장은 데님 셔츠에 짙은 색 청바지를 입어 ‘청청 패션’을 연출했다. 여기에 넥타이핀으로 포인트를 줬다. 맞춤셔츠 전문점 사장답게 그는 ‘패션피플’이었다.

새빌로우 최호성 사장이 맞춤 셔츠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1m50㎝ 줄자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새빌로우는 중국산 원단을 주로 사용하는 기존 양장점과 달리 영국·일본·체코·터키 등지에서 고급 원단을 수입하면서도 가격대는 명품 셔츠와 SPA 사이인 한 장당 6만~15만원대에서 셔츠를 판매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새빌로우는 서울 논현동 도산공원 사거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주로 20~30대 남성을 대상으로 드레스 셔츠, 캐주얼 셔츠 등을 판매하는 맞춤셔츠 전문점이다. 이곳은 기존 양복점과는 이미지가 다르다. 전통시장이나 지하상가 내에 있는 기존 양복점들이 값싼 원단·재료를 쓰는 대신 저렴한 가격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면, 새빌로우는 ‘매스티지(고급 상품이지만 명품보다는 한 단계 낮아 대중화된 상품)’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빈티지 스타일이다. 최 사장이 맞춤 제작하는 셔츠들의 가격은 6만~15만원으로 평균가격은 7만5000원 정도다. 가격만 놓고 따지면 명품 셔츠와 패스트패션(SPA, 제조·유통 일괄브랜드) 사이에 있다. 덕분에 기성복보다 값져 보이고, 명품 브랜드보다 합리적인 셔츠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잦다.

 최 사장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구정중학교와 영동고등학교를 나온 ‘압구정 키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현대건설 관리소장으로 근무한 엄한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던 못난 장남”이라고 말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직업도 없었다.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도 전공(회계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방황했다. 수업을 듣는 대신 당구를 치거나 게임을 했고, 인라인 스케이트 판매 아르바이트에 열중했다.

 결국 취직에 실패한 그는 2005년 서울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던 셔츠 가게에 취직했다. 그가 매니저로 일했던 셔츠 가게는 3년 새 매출이 5배 늘었다. 최 사장도 3년 동안 1주에 70~80시간 정도 일하면서 기술을 배웠다. 2007년 최 사장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부인과 함께 영국 여행을 떠났다. 그는 “처자식도 먹여 살려야겠는데 180만원 ‘박봉’으로는 어림없었다”며 “생각이나 정리해 보려고 아무 생각 없이 아내와 함께 영국을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랑차 떠났던 6개월간의 영국 여행은 최 사장에게 새빌로우를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영국의 양복점 문화를 보고 한국에 적용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최 사장은 “저가 위주인 국내 맞춤복 시장에 비하면 영국은 ‘별천지’였다”며 “셔츠 가게 앞에 보디가드들이 서 있고, 셔츠도 한 벌을 파는 게 아니라 7벌을 100만원 정도에 한 세트로만 팔았다”고 회상했다.

새빌로우 논현동 매장은 건축 당시 일부러 천장을 따로 공사하지 않았다. 최 사장은 “배관을 그대로 드러낸 채 천장에는 회색 페인트칠만 해 ‘빈티지’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위). 최 사장은 셔츠뿐만 아니라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든 청바지·구두·머플러까지 함께 판매한다(아래).

 영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최 사장은 2008년 서울 광화문 지하상가에 7평 규모로 새빌로우를 개점했다. 새빌로우라는 이름도 영국 런던의 맞춤복 거리에서 따온 것이다. 창업비용은 5000만원. 아버지가 퇴직해 가세가 기울자 부인에게서 창업자금을 얻었다. 보증금 1000만원에 권리금 500만원, 인테리어 2000만원이 들었고 월세도 75만원이었다. 그나마 인테리어는 목재를 사오고, 페인트칠도 직접 한 덕에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가구는 마석가구단지를 돌며 고급으로 골랐다. 최 사장은 “새빌로우가 이렇게 빨리 자리 잡게 된 요인은 고급화 전략, 온라인 홍보, 그리고 문화 마케팅”이라면서 “그중에서도 영국풍의 감각을 그대로 재현한 고급화 전략이 양복점을 ‘아저씨 문화’라고만 치부했던 20~30대 고객을 끌어들인 가장 큰 성공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가격 흥정을 절대 하지 않는다. 창업 직후인 2008년부터 결심했다. 그는 “한 번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은행 직원 한 명이 ‘옆 건물 셔츠집은 3만8000원이던데 여기 얼마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대답도 안 하고 문전박대했다”고 말했다. 기존 시장통 양복점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에 처음 3년간은 정말 ‘불친절’하게 그만의 스타일을 지켰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했다. 일반적인 양복점처럼 같은 상가나 같은 동네로 상권 범위를 스스로 한정 짓는 대신 인터넷을 통한 홍보와 배송 서비스 등을 실시한 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새빌로우를 입력하면 최 사장이 만든 블로그를 찾을 수 있다. 최 사장은 “당초 목표대로 2030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선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은 필수라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새빌로우의 인터넷 블로그 회원은 현재 9300여 명이다. 이곳에는 고객뿐만 아니라 최 사장을 벤치마킹하려는 맞춤복 디자이너들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매스티지 전략이 들어맞으면서 최 사장은 개점 3개월 만에 흑자를 냈다. 2010년에는 3년간 모은 6000만원을 투자해 서울 신사동에 데님(청바지), 남성용 액세서리 업자와 함께 15평 매장을 냈다. 올 6월에는 서울 논현동 도산공원 사거리에도 진출했다. 논현과 신사 두 곳에선 셔츠뿐 아니라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든 청바지·구두·머플러와 남성용 액세서리까지 함께 판매한다. 그는 “단순히 셔츠만 파는 게 아니라 남성들에게 옷 잘 입는 방법, 멋 내는 법, 더 나아가 새빌로우의 문화를 세일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매장전략도 실험적이다. ‘강남에 하나, 강북에 하나, 강서에 하나, 강동에 하나’ 같이 판에 박힌 매장 전략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판단 했다. 대신 ‘광화문=변호사·금융인’ ‘신사=압구정 로데오거리 방문객’ ‘논현=수입차딜러·의사’로 매장마다 타깃 고객을 차별화했다. 최 사장은 “강남과 강북의 직장인이 서로 생활수준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듯 동네마다 주요 고객들의 특징이 서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은 창업 6년 만에 월 7000만~8000만원을 버는 강소상인이 됐다. “샘플 원단 책자와 500원짜리 줄자만 가지고 강남역만 돌아다녀도 웬만한 직장인보다 더 많이 돈을 벌 자신이 있다”는 최 사장이지만 앞으로는 매장 확장 대신 ‘옷 입는 문화’를 파는 것이 목표다. 그는 “저가 이미지로 왜곡된 국내 ‘테일러-메이드 양복점(수제 양복점)’ 문화를 한 단계 고급화하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라고 말했다.

글=김영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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