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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시걸」의 생활과 작품|「러브·스토리」의 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러브·스토리』를 발표하여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각광받기 시작한 「에릭·시걸」은 『러브·스토리」가 「베스트·셀러」에 오를 무렵을 전후해서 「예일」대학교 등에서 비교문학을 강의해왔다. 「예일」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이후에도 「시나리오」집필 등 문필생활은 계속 해왔지만「에릭·시걸」자신은 교직생활이 익숙해짐에 따라 창작보다는 학연 쪽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듯 싶었다.
당년 33세의 「에릭·시걸」은 아직까지 그 스스로가 명예스럽게 생각하는 영구교수의 칭호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봄 그는 영국「엘리자베드」여왕으로부터 영화『러브·스토리」의 황실시사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를 거절하여 화제가 됐는데 이때 그는 『「러브·스토리」 따위의 소설을 쓰지 않는 일이 교수가 되는 길이라면 기꺼이 쓰지 않겠다』고 말하여 교직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나타냈다.
몇 달 전「예일」대학교의 「뉴·저널」지와「뉴요크·타임스·매거진」에 실린 『「에릭·시걸」과의 마지막 「인터뷰」』는 대체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재확인하는데 그치고 있으나 「인터뷰」를 다시는 않겠다던 그가 최근 「보그」지와의 『정말 마지막 「인터뷰」』에서 전보다 조금 발전된 그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에릭·시걸」은 그의 출세작인 『러브·스토리』에 대해 「눈물을 홀릴만콤 강하게」감동하고 있으나 작품으로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집필기간 (6개윌)이 짧았고 작품의 길이가 너무 짧아(1백71「페이지」)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러브·스토리」가 젊은 충에 호소력이 강했다는 사실은 1970년대의 젊은이나 1870,1770년대의 젊은이들이 사고의 한계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대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강한 자존심」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움」을 타는 쪽이라고 스스로의 성격을 표현한 「에릭·시걸」은 『러브·스토리』가 사회의 모든 층으로부터 공감을 얻은 것은 아니라면서 그 증거로『러브·스토리』가 출판된 후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사들이 이를 거부했다는 점을 들었다.
「에릭·시걸」은 집필을 계속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창작과 교직을 바꾸겠다는 교직에 대한 강한 집념은 한 걸음 후퇴시켰지만 좀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에릭·시걸」은 어렸을 적부터 약한 체력을「커버」하기 위해 시작했던 「마라톤」이 이제는 뗄 수 없는 취미와 특기가 됐다고 말하고 금년에도 「풀·코스」를 16번이나 뛰었으며 내년도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뉴요크」의 많은 지식인들(인체 하는 사람들)이 「칵테일· 파티」 둥에서 자기와 자기작품을 깎아 내렸으나 그들이『러브·스트리』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주장, 그들이야말로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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