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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20년만의 성묘|박찬호<서울농업대학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추석에 휴전선 근방 출입제한구역에 성묘 차 출입을 허용한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반신반의하면서 20여년 만에 부푼 마음으로 우리 형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성묘를 갔었다. 20여년 동안 가까우면서도 그렇게도 멀던 고향을 그리며 소위 민통선 초소에 다다르니 각 신문·방송국보도진이 대기하고 있었고, 해당지역 부대에서 정보참모가 직접 명절날인데도 나와 있어서 우선 무엇보다 염치없는 일이나 나의 소원을 이룰 수가 있을 것으로 느껴져서 반가웠다. 나의 예상대로 참으로 뜻밖에 군 당국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 차는 물론 각 보도진 차와 함께 9대의 차 대열이 오직 우리의 성묘를 위해 달리게 되었으니 이렇게 들어가기 쉬운 곳을 20여년 간이나 못 다닌 것을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 금할 수 없었다.
너무나 변한 고향모습에 옛 모습을 회상해 보며 한참을 달린 후 묘소 근처에서 하차하여 월남전선의 「정글」을 연상케 하는 갈대와「아카시아」 숲을 헤치며 묘소를 찾았다. 봉분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다행히 있으나 온갖 잡초·잡목에 뒤덮여 있음을 볼 때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불효로 죄송한 마음 가슴이 메워져 데리고 들어간 아이들한테도 할 말이 없었다.
벌초를 마치고 잔을 올리며 그간의 불효에 대한 사죄를 빌고 앞으로 자손으로서의, 또는 우리민족으로서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 가문을 지킬 것을 다짐하고 돌아서니 그래도 한결 발길이 가벼워졌다. 지하에서나마 우리형제와 손자들을 대하셔 기뻐하실 것을 믿고 묘소를 떠났다.
몇 번이고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고향을 돌아보다 귀가 길에 오르니 실향민의 설움은 물론 이민족의 설움이 사모 침을 금할 수 없었으며 우리 민족이 어찌하여 이모 양이 되었나 생각하니 참으로 한심스럽기만 하였다.
그러나 현실을 어찌하랴!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라도 모든 것을 조국에 바쳐 번영된 조국통일을 이룩하는데 차곡차곡 전진하여야 할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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