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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만의 성묘|연천·청원 등 민통선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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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철원=안명찬 기자】20년만에 찾아간 고향과 선영은 키를 넘는 갈대·엉겅퀴 등 가시덤불에 얽힌 폐허였다. 집터는 자취를 잃어 어디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고, 조상의 무덤 위에는 팔뚝 같은 나무가 무성히 자라 봉분을 분간할 수 없어 20년만에 처음으로 찾아간 고향 땅은 이미 옛날의 고향이 아니었다.
3일 추석을 맞아 군 당국은 민간인 출입제한구역인 민통선북방 연천·철원·화천·양구 등 지역에서 2천5맥59명을 군의 안내로 성묘를 허락했으나 묘소를 찾아간 사람 중엔 성묘를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이도 있었다.
20년만에 고향 길을 찾아갔던 전응하씨(37·철원군 갈말면 신월원리) 등 일행 11명은 처참하게 변한 고향의 모습에 또 한번 넋을 잃고 통곡, 분단의 설움을 되새기고 돌아왔다. 이날 전응하씨 등 11명은 군 당국의 알선으로 20년 전 떠나온 철원군 무장면 산명리의 옛 집터와 이 마을 뒷산에 있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갔다.
전씨는 서울에 있는 누나 등 7명의 가족과 민간인통제선 너머 15㎞의 지점에 있는 옛 고향 땅을 찾았으나 집 자취는 간데 없고 주춧돌과 깨진 토기그릇이 흩어져 있어 여기가 옛집자리인가보다 하고 추측할 수 있었을 뿐 옛날에 단란하게 살았던 집 자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풀밭이 된 집터에 주저앉아 새로운 통곡에 복받친 이들은 다시 뒷산에 모셨던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으나 철책 바로 너머에 있어 찾지 못했다. 큰길가에서 무덤이 있는 부근까지는 키를 넘는 가시덤불, 갈대·엉겅퀴들이 얽혀 1m앞을 내다 볼 수도 없어 안내하던 군인들이 칼을 휘둘러 오솔길을 내고 한 발짝씩 걸어 2백m의 산을 오르는데 1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그나마 아버지의 무덤은 철책너머에 들어 찾아가지 못했고, 철책너머 3백m앞에 보이는 무덤부근은 무성한 풀밭이었다.
이날 전씨와 같이 성묘 길에 올랐던 오길성씨(48·신월원 군청근무)는 민통선에서 8㎞너머의 외촌리에서 아버지의 묘를 1시간이나 헤맨 끝에 간신히 찾았다.
무덤은 비에 씻기고 잡초가 우거져 도저히 무덤이라고 믿을 수 없었으나 바로 살던 뒷산이어서 눈어림으로 찾았다.
오씨는 폐허가 된 무덤에서 한참동안 통곡, 20년만에 벌초를 했는데 벌초를 하자 제한시간이 되어 술 한잔 붓는 둥 마는 둥 되돌아 나왔다.
오씨는 돌로 표지를 해놓고 다시 찾을 기약을 남겼다. 전씨와 오씨 등 20년만의 성묘 객들은 무성한 수풀, 폐허된 고향을 보니 슬픔과 두려움이 앞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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