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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제왕의 말 잘하는 비법은 ‘말 없이 듣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래리 킹은 여섯 살 때부터 방송인이 되고 싶었다. ‘래리 킹 라이브’ (1985~2010) 진행자로 활약하며 CNN 간판스타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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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보다는 ‘친한 사람’이 많아야 사는 게 수월하다. 친하다는 것은 소통이 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이 잘된다는 것은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남에게는 하지 않을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친한 사이다.

말하는 게 서툴러 ‘고생한다’ ‘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대화법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고려해 볼 만한 책으로 토크쇼의 제왕 래리 킹이 지은 『대화의 법칙』(1994·이하 『법칙』)이 있다. 원제는 ‘누구하고건, 언제건, 어디서건 이야기하는 법: 좋은 의사소통의 비결(How to Talk to Anyone, Anytime, Anywhere: The Secrets of Good Communication)’이다(한글판은 절판됐지만 인터넷으로 헌책을 주문할 수 있다).

1957년부터 5만 명 인터뷰
래리 킹에 대해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평가했다. “래리 킹보다 더 성공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은 없다.” 킹은 1957년 마이애미에서 방송에 데뷔한 이래 5만 명과 인터뷰해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게 했다. 클린턴·푸틴·고르바초프 등 국가원수급 인사부터 마돈나, UFO 신봉자, 음모론자, 심령술사에 이르기까지 킹은 모든 분야의 인물을 만났다. 그는 20세기 미국 정치사, 사회사, 문화사의 산증인이다.

킹은 미국 제37대 대통령(1969~74) 리처드 닉슨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과 개인적인(personal) 친분이 있다. ‘친한 사이’다. 하지만 『법칙』에 뾰족하거나 현란한 내용은 없다. 말하기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평범한 진리를 담았다. 미국 사람이라고 모두 말을 잘하고 말하기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에는 상당수 미국인도 공감한다. 『법칙』은 말하기 공포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돕는 스테디셀러다.

『법칙』에는 입사 인터뷰,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 파티나 상갓집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요령이 나온다. 예컨대 내 업무 성과에 불만이 있는 것 같은 상관에게는 “도와주십시오(Help me)”라는 말이 통한다. 그렇다면 부하에게 말하는 법은? 상관이 ‘내게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방식이 떠오를 것이다. 부하에게도 그 방식대로 말하면 된다. 이런 요령도 나오지만 『법칙』의 핵심은 성공적인 대화로 친분을 쌓는 방법이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잘한다. 역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다. 당신이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면 말을 더 잘하게 됨으로써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말이 성공하는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숫기가 없다. 기죽을 필요는 없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 힘을 내자. 누구나 바지 입을 때 다리를 한쪽씩 바지 속으로 집어넣는다.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대화 상대나 사람들은 대부분 중산층 아니면 저소득층 출신이다.

누구나 잠재적인 말하기 재능이 있지만 타고난 소질도 갈고 닦아야 빛나는 재주가 된다. 거울 앞에서 말하기, 애완동물에게 말하기 같은 훈련도 말하기 실력을 쌓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말하기 스킬(skill)에 앞서 중요한 것은 말을 대하는 태도다. 말하기가 우리에게 어떤 도전이나 의무, 시간 때우기가 돼서는 안 된다. 말하기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말하기는 인생이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모든 대화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을 바꿀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대화에서 첫째 가는 법칙은 듣는 것이다. 준비와 연습, 열린 마음도 중요하지만 최고의 말하기 비법은 듣기다. 사람은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듣는 척하기만큼 힘든 연기는 없다. 들으려면 대화 상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이 관심을 낳는다. 관심은 상호적이다. 또 그를 존경해야 한다. 관심과 존경, 이 두 가지 없이 대화에서 성공할 수 없다. 관심과 존경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 누구든지 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전문가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다. 말하지 말고 들어야 배운다. 말한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털어놔야 상대방도 털어놓는다. 래리 킹을 만난 모든 사람은 몇 분 만에 이 두 가지는 알게 된다. 그가 뉴욕시 브루클린 출신이라는 것.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

대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질문에서 나온다.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왜?(Why?)”는 시대를 초월해 가장 위대한 질문이다. 헨리 키신저가 잘하는 질문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What do you think?)”이다. 키신저는 자신이 잘 아는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는다. “만약에(What if?)”도 거의 항상 효험이 확실한 질문이다.

어떤 답에 대해 좋은 후속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좌담가(conversa tionalist)다. 잘 들어야 좋은 후속 질문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잘 듣지 않는다.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작가 짐 비숍에게는 질문만 해대고 답은 듣지도 않는 친구가 있었다. “짐, 어떻게 지내?”라고 친구가 묻기에 비숍이 “나 폐암이래”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반응했다. “원더풀!”

대화로 ‘모든 사람의 모든 것’ 알게 돼
킹은 사람에 대한 ‘광적(狂的)’인 관심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 킹은 ‘모든 사람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는 명성을 얻었다. 킹은 토크쇼를 철저히 통제한다. 이를 위해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은 사라지게 한다. 킹은 ?토크쇼 사회자 중에서도 손님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경우가 여럿 눈에 띈다?고 지적한다. 유심히 들어보면 사회자들이 ‘나(I)’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는 보통 한 문장으로 담백하게 질문한다. 쓸데없이 팩트를 인용해 가며 인터뷰 대상이나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60년대에는 톡 쏘는 질문으로 유명했다. 나이가 든 다음에는 곤란한 질문을 피하게 됐다. 그래서 까다롭거나 호전적, 내성적, ‘4차원’형 인물들도 그 앞에서는 입을 연다.

킹은 실수도 많이 했다. 라디오 방송을 하다 코를 곤 적도 있고 비틀스 멤버 링고 스타를 조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자서전 『래리킹 원더풀 라이프(My Remarkable Journey)』(2009)에는 갖가지 방송 비화, 유부녀들과 바람났던 이야기, 7명의 여성과 8번 결혼해 ‘남자 엘리자베스 테일러’라 불리게 된 사연이 나온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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