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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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호 27면

공자와 맹자는 유가(儒家)의 큰 기둥이지만 정치 지도자의 자격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공자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며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반면에 맹자는 ‘군주는 당연히 군주다워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존중받을 수 없다’고 했다. 맹자가 말한 군주다움의 첫 번째 요건은 민생(民生)이었다. 백성들의 삶을 보듬어야 한다는 얘기다. 양혜왕(梁惠王)과의 대화다.

率獸食人 <솔수식인>

맹자: 몽둥이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칼로 사람을 죽이는 데 차이가 있습니까?
양혜왕: 차이가 없습니다.
맹자: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정치로 사람을 죽이는 데 차이가 있습니까?
양혜왕: 물론 없지요.
맹자: 지금 왕의 푸줏간에는 고기가 넘쳐나고, 마구간에는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들의 얼굴에는 주린 기색이 완연하고 들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나뒹굽니다. 이는 정치가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行政不免于率獸而食人).

양혜왕의 국정 운영이 ‘살인 정치’ 지경에 이르렀다는 꾸짖음이다. 학정(虐政)을 뜻하는 ‘솔수식인(率獸食人)’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맹자는 민생의 표준도 제시했다. ‘50세가 넘은 이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五十者可以衣綿), 70세가 넘은 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七十者可以食肉)’는 것이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자(鰥), 늙어서 남편이 없는 자(寡), 어려서 부모가 없는 자(孤), 늙어서 자식이 없는 자(獨) 등을 4고(四苦)라 하며 특별히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했다.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만난 것은 그의 호화별장에서였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다.

제선왕: 일반 백성들도 이 같은 호화별장의 즐거움을 알까요?
맹자: 알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그 즐거움에 이르지 못하면 군주를 욕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백성의 지도자가 돼 백성들과 함께하는 즐거움(與民同樂)을 모른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백성들과 근심을 함께할 때라야만 그 지도자를 따를 것입니다.

맹자는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 의식주에 걱정이 없도록 하는 걸 군주의 가장 큰 사명으로 본 것이다.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지도자라면 백성에게 쫓겨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23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 정치권이 되새겨야 할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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