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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은 모란, 한식은 난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7호 31면

미국인 친구와 함께 한국·중국 두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한국과 중국이 가까이 있는 나라여서 음식문화가 대동소이할 줄 알았는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감탄했다. 나도 두 나라의 음식문화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종종 생각한다.

심지어 회식 때 직장 동료들이 하는 고민도 다르다. 중국인들은 주로 ‘어디 가서 먹을까’를 고민한다. 반면에 한국인 동료들은 ‘뭘 먹을까’부터 결정한다. 중국에 있는 식당들은 규모도 크고 다양한 메뉴를 완비하고 있어야 좋은 음식점으로 평가된다. 대개 수십 가지의 요리 메뉴를 자랑하지만 음식점마다 요리 종류는 비슷한 편이다. 하지만 한국 음식점들은 전문성을 강조해선지 한두 가지 메뉴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유명 주방장이 있는 곳으로 몰리는 중국인 관광객들로선 어머니 손맛에 더 끌린다는 한국 식객들이 좁은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을 이해하기 힘들다.

중국 음식이 화려한 모란이라면 한국 음식은 단아한 난초 같다. 중국 식탁엔 다양한 메뉴가 오르지만 한국 식탁엔 한두 가지의 메인 요리에 여러 가지 반찬이 오른다. 반찬은 공짜지만 대충대충 내놓는 법이 없다. 한국에 놀러 온 중국인 친구를 어느 한식당에 데려갔을 때다. 그 친구가 음식의 섬세한 부분에까지 요리사가 신경을 쓴 데 놀라워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웃으며 “꽃잎이 예뻐야 꽃이 더 예뻐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을 음미하면서 중국인의 눈에 다소 소박해 보이는 재료지만 그것들로 아름다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게 한식의 경지라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중국에서도 한식 열풍이 불었다. 나도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과 오색오미·오행(五行)의 관계를 듣고 흥미를 느꼈다. 삼계탕 속에 있는 인삼·황기·대추·밤 등을 보며 진지하게 식사를 하자 신기하게도 몸이 정말 좋아지는 것 같았다.

먼 곳에서 수입해 온 식자재의 값이 저렴한데 한국인들은 굳이 본토 식자재를 고집할뿐더러 식재료마다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듣고선 한국인들이 약식동원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데 감탄했다.

외국인에게 재미있게 다가오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겨울에 냉면을 즐겨먹는 한국인, 추위를 피해 식당에 뛰어들어갔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며 건네주는 냉수, 드디어 몸을 녹였는데 한국인 친구가 주문한 차가운 술 등이다. 앞으로 이랭치랭(以冷治冷)이라는 말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한식을 얘기하자면 매운맛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초 중국의 어떤 잡지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맛이 매운맛이며, 가장 좋아하는 외국 음식으론 한식이 꼽혔다. 아마도 중국인에게 한국음식의 특징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매운맛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한식의 매운맛은 혀끝을 얼얼하게 만드는 쓰촨(四川)요리나 불처럼 화끈한 맛을 자랑하는 후난(湖南)요리와는 또 다르다. 한국의 매운맛은 단 듯하면서 부드럽기까지 해서 한식 매니어가 된 중국인도 많다. 다만 한국의 매운맛은 역시 뒤끝까지 맵기 때문에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한국식 찜질방에서처럼 땀이 비 오듯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중국에도 한국 김치 매니어가 상당히 많다. 중국 주부 가운데 몇몇은 한국 요리책을 사서 한국 김치를 담가보고 집에서 된장찌개를 만든다. 김치는 요즘 중국인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삼고(三高), 즉 고혈압·고혈당·고지혈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에 웰빙 음식으로 인식돼 있다. 한국 고유의 정신이 숨쉬는 한식은 이미 중국인의 별미 수준을 넘어섰다. 한류 확산을 타고 세계인들로부터 진가를 인정받을 날이 곧 올 듯하다.



천리 1979년 중국 선양(審陽)에서 태어나 선양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숙명여대 박사과정 수료. 한국에 온 뒤 주로 비즈니스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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