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대일추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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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의 유력지 조일신문은 동사 편집국장과 북괴수상 김일성과의 단독회견기를 27일자 조간 일면에 「톱」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북괴가 일본 3대지의 하나인 조일신문사 기자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은 초유의 일인데, 조일신문은 평양에다 특파원을 상주시킬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김일성과의 회견기를 이처럼 크게 보도한 것으로 보여진다.
김일성은 이 회견에서 『한국이 한·미 방위조약과 한·일 협정 등을 동시에 파기한다면 우리도 중공·소련과 맺은 군사동맹조약을 파기하겠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것은 주한미군의 철수가 전제되어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같은 주장은 얼핏보면 한반도를 강대국의 세력권적 대립에서 해방시켜, 민족자결의 여건을 성숙시키기 위해 일리가 있는 주장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일 조약은 군사조약이 아니고 한·일 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약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한·미 방위조약도 공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문자그대로 어디까지나 방위를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이 두 조약을 폐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속셈이 적화통일의 조건을 성숙시켜 보겠다는 저들의 상투적 흉계를 노출시킨데 지나지 않는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김일성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되풀이 내세우고 있지만, 지정학적인 위치로 보아 일단 유사시, 북괴는 소련이나 중공의 병력을 신속히 끌어들일 수 있는데 반해, 한국은 미군병력의 작전지원을 얻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끔 되어 있으므로 미군의 한국주둔은 한국안보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임을 강조해둔다.
김일성은 『일본이 북괴에 대해 적대정책을 변경하면 평등과 내정부 간섭·호혜주의에 입각하여 우호관계를 맺을 용의가 있다』하고, 『일본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역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현재 일본의 대북괴 봉쇄정책을 쓰고있기 때문에 자기네는 할 수없이 6·25때 싸운 불·영·화 등에서 물건을 사올 수밖에 없지만, 국교가 없더라도 무역을 확대할 용의는 있다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무역을 정치적 무기로 삼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수법을 다시 한번 동원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북괴에 대해 상품을 많이 수출코자하는 일본업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일성의 주장은 하나같이 억지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객관정세를 오단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이 못된다. 일본이 북괴에 대한 봉쇄정책을 쓰고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 미·중공의 해빙「무드」에 편승하여 일본·북괴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역을 맡아서는 안된다 운운한 것도 일본의 「아시아」정책의 기본적인 동향을 무시한데서 나온 선입관의 표명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아니 미국보다도 한발 더 앞서서 중공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평화공존의 길을 트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 미국의 대역을 맡을 생각이 있다고는 추호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중공이 「닉슨」방문을 수락했다고 해서 이것이 중공의 사회주의노선 포기를 뜻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북괴는 미국의 중공접근을 늘 행정적인 자세에서 받아들이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집단인데, 김일성의 상기주장은 「닉슨」의 중공방문을 불가피하게 긍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소의 평화공존이 미국의 자유주의나 소련의 사회주의의 포기를 의미치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있는 사실인데 「닉슨」의 중공방문수락이 중공사회주의노선의 포기를 의미치 않는다고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북괴두목 김일성이 그만큼 유치한 공산주의자에 지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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