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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운영과 공화당의 고민|자가비판과 격론과 대야작전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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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여당은 물가고, 연이은 집단행동, 북괴의 동향,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서둘러 일 처리를 해야겠다는 조바심이다. 예산안 심의도 못 하고 야당에 끌려만 가고 있는 국회운영에 대해선 비판과 고민이 많다. 16일 공화당 당무회의와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여당연석회의에선 이런 문제가 모두 제기됐다.
아침 8시부터 하오2시까지 6시간이나 걸린 「마라톤」 당무회의에서 집권대의 간부들은 조반을 선지국으로, 점심은 곰탕을 시켜다 먹으며 모처럼 눈치 살피는 일없이 허심탄회한 의견을 개진했는데 반쯤밖에 비우지 않은 곰국 그릇들이 회의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듯 했다.
이 자리에선 국회운영에 관한 자가비판을 많이 했다. 아무리 균형국회라 하더라도 여당이 야당의 손에 잡힌 소 고삐가 될 수는 없다는 논지였다.
특히 길재호 정책위의상은 상임위원회조차 야당이 출석하지 않으면 열지 않는 식으로 국회운영이 야당에 맡겨진다면 집권당의 책임문제가 제기된다고 했다.
이 문제는 하오 청와대에서 열린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도 재론됐다. 이날 따라 국회에서의 대정부질의와 4시간이나 계속된 당무회의 때문인지 김종필 총리를 비롯한 각료와 공화당 간부들은 약간 피로해 보였으며 2시를 좀 지나서야 박정희 대통령의 주재로 회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들어선 김 총리는 『신민당이 살인행정을 한다고 몰아쳐도 공화당 의석에서는 야유하나 나오지를 않더라』면서 『당의 사기가 떨어진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말을 받아 길재호 정책위의장은 『김 총리는 국회에서 침착하게 답변을 잘 하시던데 좀 마음을 가라앉히시오』라고 무마.
마침 박대통령이 들어서 좌중은 조용해졌으나 원내대책이 논의되자 김 총리는 다시 말을 꺼내 당이 좀더 적극적으로 정부를 도와주어야겠다고 말했다는 것.
회의가 끝난 뒤 백 당의장은 김 총리에게 『총리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한다』면서 『원내총무가 맡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당의장이 매일 총무에게 무엇을 도울까냐고 드나들 수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에 밀려 공화당은 내주부터 우선 추경예산안 심의를 강행하고 경우에 따라선 야당이 무한정 끌고 가는 대정부 질문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다소의 마찰을 각오하고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종결을 결의한다는 구상이 서 있다. 이런 방침은 내주 월요일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확정될 것이다.
『이른바 4인 체제다, 반 4인 체제다 하는 것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하지 않지만 물가라든지 사회문제들은 실로 심각하다.』
백남억 공화당 의장은 얼마 전에 이같이 실토한 일이 있다.
공화당 간부들의 대부분이 물가가 뛰는 것을 걱정했고, 광주단지 사건이나 교수들의 자주선언, 사법파동, 수습의 문제, 상인들의 조세저항, 최근의 파월 기술자 난동 등 잇달아 일어난 사건들을 심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가문제에 관한 정부만을 1백%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공화당 간부들의 견해인 것 같다. 그래서 당무회의에서는 17개항에 걸친 물가대책 건의안을 만들어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고 앞으로 자체에서 물가표를 만들기로 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의 비서진을 통해 콩나물에서 쌀에 이르기까지 20가지 생필품의 시장가격을 조사토록 한 것처럼 공화당에서도 중앙사무국 요원을 통해 한 달에 세 번씩 물가표를 만들어 정부 것과 비교키로 한 것.
공화당은 국회운영에 걸린 최대난제를 지방자치제문제로 꼽고 있다.
신민당의 조직적이고도 강력한 자치제 실시요구를 지난날처럼 묵살해 버릴 수만은 없다는 것이 여당 내부에 깔린 기류로 보인다. 원내 간부들은 이 문제로 예산심의가 순조롭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서 무언가 새로운 당론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는 75년 전에는 실시하지 않는다는 기본입장엔 변함이 없다.
당 정책기구의 간부는 지금까지 정부나 여당이 지방자치제 실시를 위한 실질적인 검토를 안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이제부터 자치제 실시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와 우리 형편에 맞는 법안연구를 해야 힐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76년을 실시연도로 하고 8대 국회 임기 중에 법안을 완성시킨다는 선에서 야당과의 절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공화당의 입장이다.
추경예산안 심의의 사전조건으로 신민당이 내걸고 있는 신직수 법무장관의 해임요구에 대해서도 공화당은 묵살한다는 방침이다.
물론 당내 저류에서는 여야관계로 보아 「성의」표시가 될 수 있는 어떤 조처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가 없지 않으나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이 누구겠느냐』는 상황이다.
당 간부들은 한 장관이든 혹은 범위를 넓히든 야당은 해임안을 내어 표결하고 그 결과에 승복해 달라고 야당간부들을 설득하고 있다. <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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