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국에 관한 인식 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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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경련은 며칠 전 당면한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대 정부 건의로서『신 경제 정책에 관한, 의견』을 내 놓았다.
6개항 목에 걸친 이 의견은 대체로 새해 예산안의 수감을 비롯하여 정부가 물가 안정문제에 있어서의 기본방향과 그 구체적 시책을 제시할 것, 고 세율·고 금리 등 「코스트·푸쉬」요인의 악순환을 단정할 것, 그리고 가격 결정을 수급 원칙에 맡길 것 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일련의 주장은 평소부터 자주 강조해오던 것을 다시 되풀이 한 셈이지만, 그것의 요즘처럼 심각한 경제난국을 배경으로 두고서 새삼 재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만 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번 건의에 반영된 우리경제계의 인식과 자세는 당면한 내외의 시련을 극복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운영의 원리원칙을 존중하면서 정책의 정도를 지향하는 길 이외에는 달리 이렇다 할 묘안이나 비방이 있을 수 없음을 정부측에 다시 한번 강경하게 호소한 것이라 평가되기 때문이다.
전경련의 이 같은 건의에 접한 기획원 당국은 그 다음날인 15일 물가안정을 위한 10개 당면 대책을 발표했는데, 그 골자는 주로 추석을 앞둔 가격 조작을 단속할 것 등 여전히 행정력 동원에 의한 가격규제에 중점을 둔 것으로, 그것은 종전의 정부경제 시책의 기조에 아무런 변화의 징조도 엿볼 수 없는 내용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제시한 물가억제를 위한 당면대책과 전경련의 건의를 비교해 볼 때 최근 정세에 대한 평가와 인식에 있어 양자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메울 수 없는 간격에 너무나 크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점에서 앞으로의 경제동향에 대한 전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암담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문제의 초점을 물가 대책으로 좁혀서 살펴보더라도, 물가를 현실화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안정기조를 구축하고, 가격결정에 대해서도 시장기능을 활용할 것을 주장한 전경련의 의견은 당면대책에서는 전혀 고려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발표한 당면 대책이고 성질상 주로 추석을 전후하여 크게 동요하고 있는 물가 앙등세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단기적 대책이라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물가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기본자세를 말하는 것이라면 연말까지 시간을 달라고 요구한 정부로서는 그런 정도의 안이한 태도로써 이미 고삐를 풀려난 물가를 어떻게 바로 잡아 안정 기조를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인지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물가 동태의 본질은 환율 인상 후 조성된 「코스트·푸쉬」요인에 다가 미국의 「달러」방위조치 및 일본 원화 절상 등 국외로부터 잇달아 가해진 충격이 상호 연소적 반응을 일으켜, 심화 확대된 것임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서부터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복합적인 물가상승의 요인을 단순히 행정력만을 가지고 억압할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지난 것이므로 정부의 물가 정책에 있어서의 안정기조 모색의 방향은 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가격 정책을 하루 빨리 수립하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마당에 정부당국이 국민에게 밝혀야 할 것은 새로운 물가 기조의 안정선을 합리적인 근거 위에서 구체화시켜 구체적인 정책 목표 및 지침으로서 제시하는 일일 것이며, 구태의연한 행정력 규제만으로는 도저히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국면으로 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전경련의 의견이 원칙상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실제의 경제정책을 운영할 정부 당국으로서는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제약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도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당면 물가정책에 관한 한 가격의 현실화 바탕 위에서 안정된 수준을 형성시킬 정도 적인 접근방법 모색이 더한층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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