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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에 비견할 첫 역사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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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솔제니친」의 신작 대하소설 『1914년 8월』(제1부)은 소련 안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여름 「파리」YMCA 출판부에 의해 처음 「러시아」어판으로 출간됐다. 작가 자신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말한 이 소설은 현재 「월간중앙」부록에 완역, 소개되고 있다(9월호부터 12월호까지 4회에 걸쳐). 다음은 역자 김학수 교수(외대·노문학)가 이 소설의 내용과 그 문학적 가치에 대해 쓴 글이다.<편집자주>
「알렉산드르·솔제니친」이 자기의 신작소설 『1914년 8월』을 집필 중에 있다는 것은 작년부터 서방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솔제니친」은 작년의 「노벨」상 파동 이후 일체의 외부 접촉을 피하면서 은닉 생활을 계속하고 있던 관계로 신작의 규모나 내용은 물론이고 「솔제니친」자신의 동향마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 지난 6월 「파리」에서 그의 『1914년 8월』이 처음으로 「러시아」어 판으로 출간되고 또 우리 나라에서도 이 소실이 소개됨으로써 그의 신작의 자세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솔제니친」작품은 모두가 「스탈린」시대의 암흑상을 주제로 한 자체적인 소실이었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가 그랬고 『암 병동』·『제1원』이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솔제니친」의 신작은 과거의 도식적인 『수용소 「테마」』에서 탈피한 최초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솔제니친」의 신작 『1914년 8월』은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1차대전이 발발하던 1914년 「러시아」가 동 「프러시아」를 공격하다 후퇴하는 8월10일에서 8월21일 까지를 무대로 한 역사 소설이고 3부작 중의 그 l부로 알려지고 있다.
대전직전의 「러시아」는 혁명 기운이 최고조로, 달해있던 혼란과 부추서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1차 대전은 한때나마 「러시아」를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지금까지 황제를 저주하고 불신하던 모든 「인텔리」·학생·사회 단체는 감격과 흥분 속에 전쟁을 맞이했다. 대부분의 국민여론은 이 전쟁이 침략 전쟁이 아니라 방위 전쟁이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전국방방곡곡에서 일어나고 있던 폭동·「스트라이크·「테러」행위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러시아」의 수많은 우국 청년들이 자진해서 총을 들고 전선으로 떠났다.
이러한 여세를 뒷받침해 주기라도 하듯이 대전 발발 후 며칠만에 「러시아」군은 파죽지세로 동 「프러시아」로 밀고 들어갔다.
대전 초의 「러시아」군의 승리는 국민들에게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무모한 작전계획, 지휘관의 무능, 협동 작전의 결여, 화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러시아」군은 기동성 있는 독일군에게 「타넨베르크」에서 대패하고 만다.
이상과 같이 『1914년 8월』은 「러시아」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중의 하나였던 대전 초의 11일 간을 재현한 것으로 전쟁·승리·패배·혁명 등 「러시아」국민들이 있을 수 없는 대 사건들이 정확하고 치밀한 역사적인 고증 밑에 객관적으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 속에는 전선사령관·군사령관·군단장·사단장 등 양국의 장군만도 수십 명이 등장하고 그 당시의 사회를 대표하는 각계 각층의 인물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열렬한 국수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전쟁을 기피하기 위해서 병무주장을 매수하는 지주도 있고, 과격한 혁명사상을 가진 여대생이 있는가 하면 조국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자진해서 군문으로 뛰어드는 남자대학생도 있다. 그런가하면 독일군의 공격을 받자 부하들을 내버린 채 혼비백산 도망치는 군단장도 있고, 후퇴명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 싸우는 청년 지휘관도 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근세사에서의 이 획기적인 사전을 사실적인 수법과 정묘법으로 박력 있게 타개해 나가면서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참모대학출신의 중견 장교 「보로트인체프」대령을 등장시키고 있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안드레이」공과 「피엘」을 통해 18l2년의 「러시아」를 대변시키듯이, 「솔제니친」은 정의감과 의협심이 강한 「보로트인체프」를 통해 혁명전의 미덕을 구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로트인체프」가 주요한 등장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자신이 이 소설의 실제적인 중심점과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1차대전과 혁명전야를 배경으로 한 시대 자신인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파격적인 형식과 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솔제니친」은 자기 소설에서 급격한 변동을 요하는 장면마다 「시나리오」를 도입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한 「챕터」를 모두 그 당시의 신문내 용으로 메우기도 하는 등 파격적인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전에도 없는 신어를 수없이 창조해 내기도하고 고어·폐어·속어·방언·속담 그리고 「러시아」어 특유의 무주어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반세기전의 시대감각과 분위기를 실감 있게 재현시키고 있다.
그밖에도 작품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묘사 가도가도 끝없는 남 「러시아」의 들판이며 「러시아」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활한 초원에서의 웅장하고 찬란한 해돋이 광경이며, 그지없이 신비롭고 오묘한 「카브카즈」산맥이며, 죽음을 앞둔 정막 속의 밤하늘의 묘사 등- 「솔제니친」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전혀 볼 수 없던 자연묘사 면에서도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아뭏든 여러 가지 면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비교되고 있는 『1914년 8월』은 그 웅장한 역사적인 「스케일」과 낭만, 다양스러운 작중 인물의 심리묘사·대화·독백·독특한 형식과 문체로 해서 장엄하고도 다채로운 일대 서사시를 이룩해 놓았다.
「솔제니친」자신이 <자기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1914년 8월』의 제2부가 언제 나올지는 아직도 미정이지만, 그는 제 1부에서 이미 자신의 문학을 더욱 격조 높은 고전적인 차원으로 승화·발전시킴으로써 다시한번 그의 빛나는 문학적인 천분과 저력을 과시했다 할 것이다. 그러고 이번에 발표된 제1부만 해도 3천7백장에 달하는 장독인 만큼 이 소설이 완성되는 날에는 세계 최대의 장편이라고 하는 『전쟁과 평화』를 양적으로도 능가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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