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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의 방침 「구호」로 끈날 우려|「산업합리화」계획의 배경과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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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업합리화 논의가 갑자기 활발하게 일고 있다. 정부는 최근의 급격한 국제정세 변화와 한국경제가 당면한 기업불황 및 물가부동의 어려운 문제와 관련하여 장기적인 대책의 하나로 산업합리화를 촉진할 계획임을 새삼 강조하고 나섰으며, 이와 때를 같이 하여 대한상의는 부설산업합리화연동본부가 2년 전에 성안, 정부에 낸 일이 있는 산업합리화촉진법 제정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이에 따라 상공부는 우선 외국의 기업규모와 우리 나라 기업규모의 비교 분석작업에 착수, 기업규모의 적정 단위화 노력에서 산업합리화의 길을 찾아보기로 했으며, 필요하다면 경제계에서 제외한 것과 유사한 내용의 특별법까지도 제정하여 이를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오랜 「산업정책 부재」현장에서 탈피, 산업의 교통정리와 함께 구조적 개편을 통해 산업의 체질을 개선, 장학하기 위한 새로운 산업정책의 정립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으로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그러나 자금의 산업합리화 논의의 배경이나 산업합리화, 그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내용, 이고 우리의 특유한 기업 경영환경 등 여러 각도에서 고찰해 볼 때 이의 실현에는 숱한 문젯점이 가로 놓여 있으며, 따라서 자칫하면 한낱 구호에 그쳐 버릴 공산이 크다는 점을 미리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첫째, 정부가 새삼 산업합리화 계획을 제기한 것은, 시기적으로 보아 한국 경제가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운 국면의 책임을 기업과 소비자 측에까지 확대,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따라서 그것을 하나의 확고한 산업정책 방향 정립으로 보는 것은 아직 이르며 책임 소재와 주의를 분산시킴으로써 정부에 쏠리고 있는 화살을 피해 보려는 하나의 방위에 불과 할는지 모른다.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산업합리화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특히 68년에는 앞에 든 산업합리화운동본부까지 설립, 이를 지원할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이와 관련되는 어떠한 정책이나 시책도 구사하지 않은 사실로 미루어 이러한 의혹은 더욱 높아진다.
둘째, 정부는 경영 단위의 국제 규모화를 산업 합리화의 첩경이라고 믿고 외자 도입과 조세정책, 재정 금융면에서 기업의 합병, 통합과 대단위화를 촉진시킬 계획으로 있으나 그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우리주변에는 기업의 대단위화를 저해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이 협소하고 자본이 영세하다. 우선 시장과 자본면에서 대단위화가 가능하더라도 기업이 정치의 그늘 속에 성장해 왔고, 지금도 그런 풍토가 시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서 대단위화란 불가능한 일이다. 승용차와 「버스」·「트럭」·삼륜차를 모두 합쳐 연간 수요가 5만대를 넘지 못하는 자동차 「메이커」를 4개 사나 인가 난립시킨 것이라든지, PVC·소모방·화직·비료·「시멘트」등 시절과잉에 허덕이고 있는 업종들의 경우와, 최근 한전 인수설이 나도는 민자 건설 등 실례는 한둘이 아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설립했기 때문에 다수의 국제규모 미달업체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각축하고 있으며 비료·PVC·「시멘트」같은 분야에서는 규모면제서 부족함이 없는 업체의 경영까지도 어렵게 만드는 사태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직선적인 가격규제도 규모의 대단위화와 이를 통한 경영의 합리화 내지 산업합리화를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라고 해야 한다. 기업의 제품 가격 결정에 정부가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것은 우리의 기업 환경이나, 경제 현실에 비추어 불가피한 일로 지적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동시에 기업의 원가절하 노력, 즉 기업내부의 경영합리화 의욕을 저장시킨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밖에 소유와 경영의 비분리, 특히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근대적인 경영기술에 어두운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저해 요인과 관련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산업합리화 란 경제건설의 출발 단계서부터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시기적으로 늦어진 우리의 산업합리화 는 보다 면밀한 현실 분석 「연구와 이를 구현키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계획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단시일 안에 실현 가능한 일도 아니다.
서독은 1, 2차 대전 후 폐허 속의 경제 건설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산업합리화 위원회를 정부기관으로 설치, 모든 경제 정책을 산업합리화 계획의 테두리 안에서 수립, 집행했으며 일본 역시 전후에 산업합리화 운동지침을 각령으로 제정, 뒤에 이를 법으로 보관, 정비하여 기업의 건설·정비·합병 등을 지원함으로써 오늘의 일본 경제의 견실한 산업 기반을 구축했다.
또한 영국이나 이태리동지에서는 산업재편 공사를 별도로 설립, 산업 합리화 계획을 밀고 나갔다.
이러한 예로 미루어 볼 때 산업합리화를 단순히 기업 규모의 적정화라든가, 기업 내부의 경영정책의 개선으로 보고, 또 그것이 과히 어렵기 않은 일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되며 보다 전문적인 시야에서 장기간의 연구검토에 이어 산업정책의 지주로 총력을 집중하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변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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