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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史 남북 이견 좁힐 계기"

중앙일보

입력

북한에서 내려온 고구려 유물들이 석 달 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났다.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특별기획전 고구려!-평양에서 온 무덤벽화와 유물' 특별전시장을 찾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 민족대회'의 북한쪽 참석자 1백5명은 분단 뒤 처음 남한에 온 고구려 유물들을 둘러보며 "뜻깊은 전시"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6일 막을 올려 이미 30여만명이 관람했다는 주최 측 설명이 이어지자 "역시 고구려는 힘이 세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침 일찍 경복궁을 거쳐 오전 10시쯤 코엑스에 도착한 북측 대표단은 "평양 박물관에서 보던 보물들을 서울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전시물 하나 하나에 애정을 드러냈다.

전시 기획위원회 위원장인 이형구 선문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에 들어서던 장재언 북쪽 단장은 현재 북한 땅이 아래로 간 '고구려 강역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 교수가 연대기표 앞에서 "고구려의 건국 연대를 남한은 기원전 37년, 북한은 기원전 277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등 남북 역사학자들이 다른 의견을 내는 부분에서 토론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하자, 허종호 조선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부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 부소장은 "견해가 다른 대목이 많은 것을 안다. 양쪽 연구자들이 자꾸 만나 이견을 좁힐 수 있는 전시나 학술회의 등 이런 기회를 자꾸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그는 또 "'고구려!'전은 남북이 오래 헤어져 있으면서 이질화한 문화적 동질성을 찾기 위한 좋은 자리"라며 공동 주최자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중앙일보.㈜SBS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반짝이를 수놓은 검은 치마 저고리 차림이 눈길을 끈 평양 장충성당 여신도들은 "여기서 봐도 이리 좋은데 와서 직접 보면 어떻겠느냐"고 남쪽 참석자들을 에둘러 초청했다.

'우리 민족끼리'라고 쓰인 깃발을 든 이산옥(53) 북한 카톨릭여성회 회장은 "고구려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한 국가였다. 남과 북 우리 모두가 고구려의 후손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통일을 어서 이뤄 평양으로 놀러 오시라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네까"라고 농을 해 화기에 찬 분위기를 이끌었다.

'고구려!'전의 공동기획위원장인 서길수 서경대 교수, 학술자문위원인 노태돈 서울대 교수와 최종택 고려대 교수 등이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동안 남북 참석자들은 감회가 깊은 듯 서로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했다.

주진구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은 '고구려!'전이 5월 25일까지 연장 전시된 뒤에 부산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를 듣자 "나도 다 못 본 걸 남한 분들이 먼저 보시니 참 좋다"는 덕담을 던지기도 했다.

한시간여 전시회를 관람한 북쪽 대표단은 코엑스 전시장 앞에 설치된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다시 만납시다" "또 오갑시다"는 인사를 나눴다.

'고구려!'전이 남북을 이으며 일군 열기에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도 잠시 칼바람을 잊은 듯 훈훈한 봄 공기가 남북 참가자들의 가슴을 녹였다.
정재숙 기자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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