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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느낌 제대로 살리는 건 … 스타일 달라도 역시 청자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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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통 뒤주 위에 차린 디저트 상. 청자빛과 옹기빛의 조화가 돋보인다. 촬영협조=르크루제

정통 한식, 퓨전 한식에 이어 이젠 모던 한식이 대세다. 상다리 휘어지도록 거하게 차린 한 상을 고집하지도, 외국인 입맛에 맞추겠다며 이 나라 저 나라 음식을 섞은 국적불명 요리를 창조하지도 않는다. 한식의 정체성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춰 담아내는 게 ‘모던 한식’ 이다. 2002년부터 모던한식당 ‘콩두’를 운영하고 있는 한윤주(47) 대표에게 모던 한식상 차리는 법을 들었다. 한 대표의 조언은 “‘모던’이라고 해서 전통의 맛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당부에서 시작됐다.

1 ‘콩두’ 한윤주 대표가 차린 모던 한식상.

먹는 방식 바꾸는 것도 한식 세계화 전략

한윤주 ‘콩두’ 대표가 제안한 모던 한식상 메뉴는 단새우 술찜과 ‘ㄱ’자 등심구이, 연잎 흑돼지 보쌈과 꽃게탕·우엉잡채 등이다. 여기에 청둥호박 타락죽과 전복밥을 더했다. 한 대표는 우리 맛의 정수를 ‘발효’에서 찾았다.

“된장·청국장·김치 등 발효음식에서 나는 냄새를 숨기려고 하지 마세요. 서양사람들이 치즈 냄새를 부끄러워 하던가요? 우리 발효 음식에는 단백질을 저장해 먹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어요. 자부심을 갖고 ‘스토리 텔링’ 기법으로 설명하면 외국인들도 선뜻 그 세계를 맛보고 싶어합니다.”

손님 중 외국인 비율이 25∼30%에 달하는 ‘콩두’에서 냄새가 가장 강한 ‘보리굴비’와 ‘청국장 소스를 곁들인 두부 스테이크’가 판매 1, 2위를 차지하는 인기메뉴란 사실이 그 증거란다.

맛은 전통을 고수하되 먹는 방식은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변형시켜도 좋다. 숟가락·젓가락뿐 아니라 포크·나이프로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바꾸란 얘기다. ‘ㄱ자 등심구이’가 그 좋은 사례다. 얼핏 서양요리인 ‘티본 스테이크’처럼 보이지만 맛을 보면 한식 그 자체다. 제40호 전통식품 명인 한안자 여사의 30년 묵은 전통간장과 의성 통마늘로 만든 흑마늘이 주재료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통간장으로 소스를 만들어 잰 데다 대추·은행·밤 등으로 고명을 해 올렸으니 맛은 영락없는 우리네 갈비찜이다. 발라먹기 번거로운 꽃게탕도 변신시켰다. 꽃게를 절구에 빻은 뒤 살을 발라내 재료로 쓰고, 등딱지를 제외한 나머지 꽃게 껍질은 갈아서 국물 속에 집어넣었다. 꽃게탕 특유의 맛과 키토산 가득한 영양소를 된장찌개 먹듯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반찬을 한꺼번에 차리는 전통 한식 상차림법에도 변형이 필요하다. 식사를 통해 대화 시간을 확보하려는 현대인의 욕구에 맞지 않아서다. 한 대표는 “한번에 차려놓으면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1시간 끌기가 힘들다”면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식사 자리라면 요리를 하나씩 순서대로 내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모든 요리를 1인분씩 따로 담아낼 필요는 없다. 뚝배기째 식탁에 올려놓고 즉석에서 덜어먹게 해도 충분히 멋스럽다.

2 한 폭의 그림 같은 디저트 접시. 흰 팥앙금으로 매화나무를 그려넣었다.

청자빛 식기, 자연 소재와도 잘 어울려

서양식 식기로 한식 분위기를 내려면 색깔 선택이 중요하다. 가장 잘 어울리는 색으론 청자빛을 닮은 깊은 파란색이 꼽힌다. 나무색·흰색 등 우리 전통밥상의 색깔과 궁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또 전통 옹기 빛깔과도 잘 어울려 섞어 쓰기 안성맞춤이다. 청자빛 그릇 밑에 연잎·나뭇잎 등을 깔아도 좋다. 청자의 푸른빛과 초록의 싱그러운 색깔이 조화를 이뤄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청자빛 식기는 나무나 종이·돌 등 자연소재와 함께 사용하기도 좋다. 상차림에서 자연소재를 쓰면 건강한 음식 느낌이 살아난다. 한 대표는 우엉잡채를 종이호일에 담고 이를 복주머니 모양으로 만든 뒤 통째로 청자빛 접시 위에 올려냈다. 모든 음식을 먹기 직전 조리해 뜨거운 상태로 내놓기 어려워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잡채 복주머니를 미리 만들어 냉동실에 보관했다 필요한 시간에 스팀오븐이나 찜기를 이용해 데워내면 간단하다.

청자빛은 한식 분위기뿐 아니라 가을 느낌을 내기에도 유용하다. 청자빛 용기에는 쉽게 시드는 꽃보다 오래 유지되는 마른 나뭇가지가 더 잘 어울린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긍정적인 요소다. 청자빛 원통형 그릇 안에 무를 깐 뒤 나뭇가지를 무에 꽂고, 증편·유과·곶감 등을 실에 매달아 나뭇가지에 달아놓으면 재미있는 한식 디저트 겸 테이블 장식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청자빛은 빨강색과도 잘 어울린다. 망개와 꽈리 등 빨강색 가을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를 청자빛 식기 주변에 놓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고 세련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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