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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실험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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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은 어느 대학에나 「럭비·팀」이 있지만 「시카고」 대학만이 그 예외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대학의 운동장은 언제나한산하다.
「시카고」 대학의 운동장 한 모서리에는 조그마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엔리코·페르미」가 처음으로 원자핵분리실험을 했다』는 짤막한 글이 새겨져 있다.
원자력시대의 제막이 바로 여기서 올려졌으며, 그 산실은 이 대학의 실험실이었던 것이다.
이후부터 특히 미국에서의 중요한 과학적 실험은 모두가 대학의 실험연구실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대학에 과학적 「브레인」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 이라기 보다는 대학이 앞장서서 과학자에게 제일 좋은 연구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일본서 제일 처음으로 과학 위성을 만든 곳은 동대 연구실이었다. 영국에서 핵「에너지」 실험시설이 제얼 잘된 곳은 「옥스퍼드」대학이다.
최근 자기대학의 연구시설비로 할당된 외국차관을 엉뚱한 곳으로 빼돌렸다해서 교수들이 집단사표를 낸바있던 전남대 공대의 경우는 이들과는 너무도 딱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며칠 전 본지 광주주재기자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이것이 과연 공과대학의 연구실일까 하는 한숨을 저절로 쉬게 한다.
가령 동대학 요업학과 실험실에는 수도조차 없어 「드럼」통으로 물을 날라 쓴다. 비치된 실험기구라고는 고작 사기 그릇 서너 개뿐, 쇄석기도 없어 이웃 개인공장들에 구걸해 다닌다고 한다.
하기야 실험기구만으로 과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7세기의 「라이프니츠」는 자기 손으로 「렌즈」를 깎아 썼다. 그게 근의 실험실의 전부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뉴튼」에게 필요했던 실험도구도 옥외의 사과나무 한 그루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나는 가설만을 뒤적거리지는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고있는 것이다.
근대과학에는 수천 수만 개의 가설을 세우는 것보다도 실험이 앞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 실험은 현대에 이르면서부터 더욱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보험들을 우리네 과학자들은 거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전남대 공대는 바로 그 최악의 상태의 상징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모든 실험이 세계적인 발명·발견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에 어느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전시효과를 따진다면 IDA교육차관 90만 「달러」는 공대보다 의대 쪽에 가는 게 훨씬 클지도 모른다. 「럭비·팀」이 없는 「시카고」대학과 우리네 공대와의 차리는 실험실이나 연구비규모의 차이만은 아닌 듯 하다. 그 이전의 발상이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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