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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사퇴로 재연 수련의파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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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대학교 의대부속병원 40여명의 「인턴」과 「레지던트」1백여 명은 6일 하오 『그동안 부당한 처우를 감내하면서 당국의 선처를 기다렸으나 인내의 막다른골목에 닿아 이 이상 희생을 강요당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집단사표를 던졌다. 병원당국은 『앞으로2∼3일 안에 복귀하지 않으면 사표를 수리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혀 「대책 없는 설득」과 「집단사직」의 소용돌이에 말린 입원환자들은 극도의 불안에 떨고있다.
지난 4일 상오 서울의대부속병원 「인턴」39명이 사전통고 없이 일제히 기숙사를 떠나자 한동안 잠잠했던 인술파동은 병원 안을 휩쓸기 시작했다. 「레지던트」들은 각각 기별회의를 열어 동조여부를 논의한끝에 마침내 집단 사직키로 결정했고 병원당국은 최악의 상태만은 피해 줄 것을 간곡히 설득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턴」과 「레지던트」에 의한 처우개선요구는 최근3년 동안 해마다 되풀이됐고 올해 들어 두번째.
지난 6월 국립의료원 「인턴」 집단사표 파동이 있자 서울의대·부산의대·경북의대·전남의대 등 4개 대학 부속병원으로 파급되었다. 이들의 요구는 한결같이 현실에 맞도록 처우를 개선하라는 것.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행정당국이 자기들을 예비의사로 취급하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우리는 수련의가 아니라 국가면허를 가진 의사이다. 보다 전문적인 의학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교육병원에서 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마치 견습하는 예비의사로 착각하여 월1만9천 원에서 3만원정도의 보수를 주는 것은 최저생활의 보장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서울의대수련부장 이정균 교수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인턴」과 「레지던트」의 보수는 충분치는 못해도 월4∼5백「달러」는 되어 생활을 영위하고 책을 사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현실에 동떨어진 낮은 보수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①직급개정을 통한 처우개선과 의무직 수당 지급②일관성 있는 보건정책의 수립 ③의료인의 해외여행 규제 철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4년제 법과대학을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3급을 대우를 해주나 6년제 의대를 졸업, 국가고시에 합격한 「인턴」을 4급 갑으로 대접하는 것은 큰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면에서도 현재 「인턴」들은 수당 없이 1만9천원, 「레지던트」4년차 생이 겨우3만원을 받고있어 이를 「인턴」3급을 4호봉으로 올려 3만3천5백40원(의무직수당 5천원 포함)을 지급하고 「레지던트」4년차 생은 3급갑 5호봉으로 대우하여 4만9천2백70원 (의무직수당 1만원 포함)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 「인턴」을 4급갑 1호봉(2만3천3백70원), 「레지던트」4년차 생을 3급을 2호봉 (3만6백80원)으로 직급을 조정하는 대신 의무직 수당은 한푼도 계상하지 않은 개선 안을 내놓자 「인턴」과 「레지던트」들의 불만은 폭발되었다.
더구나 보건행정당국이 전체국가예산가운데 우겨 0·9%의 보건예산을 책정했을 뿐이고 의료인이 해외여행을 할 경우「보건소근무1년」을 허가 조건으로 내세우자 헌법에도 없는 자유침해라고 주장했다.
지난 7월22일 서울의대 「인턴」「레지던트」들은 『의사는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다는 윤리적 대 명제 아래 우리는 일단 극한 사태의 보류를 결정』한다면서 『앞으로 당국에 의한 성의 있는 사태해결을 촉구』했었다. 그후 44일 동안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던 이들은 이번 정부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 ,마침내 실력행사에 돌입한 것.
이와 같은 사태전전에 대해 서울대의대교수 등 의료인은 한결같이 당국에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는커녕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성의가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서울대의대 냇과의 L교수는 『해마다 문제가 되풀이되어도 문교부·보사부 등 관계당국에서는 책임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인술을 베푸는 의사도 먼저 인간이다. 인간의 최저생활보장 요구는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고 산부인과의 K교수는 『최근 물가는 마구 치솟고있는데 수련의사라고 굶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욋과의 P교수는 수련의사의 박대는 일제 때부터 내려온 의료계의 악습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전문의제도는 1950년에 제정 공포된 의료법에 근거, 전문의 수련을 위한 수련병원을 인정하는 제도는 지난 64년에 채택되었다.
의과대학 6년 과정을 마치고 의사면허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인턴」1년, 「레지던트」4년을 거쳐 전문의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현재 전국의 수련의사 정원은 「인턴」이 43개 병원에 5백44명, 「레지던트」가 65개 병원에 1천7백17명. 그중 국·공립병원에 7백32명이 배치되어 수련하고 있다.
사립병원인 성모병원은 「인턴」에게 3만원, 「레지던트」에게 3만8천 원에서 4만7천 원까지 봉급을 주며 연2백%의 보너스도 지급하고 있다.
또 「세브란스」병원이나 고려병원의 경우 3만원∼5만2천 원의 봉급에 연 2백∼3백%의 「보너스」를 주고 있다.
이에 비해 국·공립병원 수련의사들은 특진환자를 제외한 일반환자의 주치의로 혹사당하면서 생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인술을 베푸는 의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환자를 버릴 수 없다는 「히포크라데스」 의 윤리와 사명이 있다. 환자와 병원을 지켜 질병을 퇴치할때 생활을 위한 투쟁도 명분을 찾게되는 것.
그들이 환자를 외면할 때 이미「인술부재」를 낳고 추악한 의료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행정당국도 미봉책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의 수립이 아쉽다. 연중행사로 변한 인술파동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버리고 이번 사태가 다른 병원으로의 확대가능성마저 있는 점에 미뤄 의료인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을 성의 있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재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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