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걷게 할 첫 열쇠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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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영화 ‘슈퍼맨’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1995년 말에서 떨어져 목을 다쳤다. 이 사고로 어깨 이하가 모두 마비돼 여생을 휠체어 위에서 보냈다. 그는 슈퍼맨과 같은 불굴의 재활의지를 보여 세상을 감동시켰지만 끝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채 2004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리브가 장애인이 된 것은 척수의 중추신경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뇌와 척수로 구성된 인간의 중추신경계는 한번 손상되면 자연 재생이 되지 않는다. 설령 절단되더라도 수술로 이으면 되살아나는 손가락 등의 말초신경과는 딴판이다. 이런 중추신경을 되살리기 위한 실마리를 국내 학자와 미국 연구진이 함께 찾아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는 연구소 소속 허은미 박사가 미 존스홉킨스 의대 연구팀과 함께 포유류 말초신경계의 재생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30일 밝혔다. 지난 28일자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를 통해서다. 허 박사 등은 신경세포의 척삭돌기(다른 신경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긴 섬유 모양 돌기)가 손상되면 세포 내 3개의 단백질이 기능적으로 연결돼 척삭돌기를 되살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각각 세포 내에서 신호 전달을 조절하는 단백질(PI3K)과 신경세포를 성장시키는 단백질(GSK3), 유전자 발현(Smad1)을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 등을 통해 PI3K가 활성화되면 GSK3는 거꾸로 비활성화되고, 최종적으로 신경 재생을 유도하는 Smad1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PI3K·GSK3·Smad1은 제각각 중추신경을 부분적으로 재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중추신경계 내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다. 허 박사는 “말초신경계에서 세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확인한 만큼 중추신경계에서도 같은 맥락의 연구를 해 볼 만하다”며 “장기적으로 중추신경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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