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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의 성녀' 윤학자 탄생 101돌에 본 한·일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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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윤학자 여사의 장남 윤기 회장(앞줄 왼쪽 넷째)과 라종일 전 주일본대사(앞줄 왼쪽 여섯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식이 끝난 뒤 포즈를 취했다. [사진 수림문화재단]

‘갯가의 성녀’ 윤학자 여사 탄생 101주년을 맞아 한·일 관계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30일 오후 5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수림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숭실대가 후원한 이날 윤학자 여사 탄생 기념행사에는 윤 여사의 장남인 윤기 숭실공생복지재단 명예회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라종일·최상용·신각수 전 주일대사, 이인호 전 주러시아대사,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 김경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 상임이사, 박지원 국회의원, 나시모리 시오조 고치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김 전 국회의장은 개회사에서 “한·일 양국관계가 날로 냉각되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존경하는 윤학자 여사의 정신을 돌아봄으로써 양국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주제발표를 통해 윤 여사의 일생을 되새겼다. 윤학자 여사의 본명은 다우치 치즈코(田內千鶴子). 일본 고치(高知)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는 부친을 따라 전남 목포로 건너왔다. 1936년 목포공생원에서 고 윤치호 전도사와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윤 여사는 윤 원장과 결혼해 공생원 아이들의 어머니가 됐다. 6·25전쟁 당시 식량 배급을 받으러 광주도청으로 간 남편이 행방불명 되면서 윤 여사는 갖은 고생을 하며 고아가 된 목포 아이들을 홀로 거뒀다. 68년 폐암으로 사망하기까지 그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의 수는 3000여 명. 68년 그의 영결식은 목포시 최초의 시민장으로 치러졌다. 윤 여사 사후 30주년인 98년엔 그의 생애를 다룬 한·일 합작영화 ‘사랑의 묵시록’이 상영됐다.

 라 전 대사는 윤 여사의 일생을 회고하며 “3000명의 어머니로 산 윤 여사의 사랑은 지금까지도 한국와 일본의 가교로 남아 다양한 복지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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