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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현지 르포] 귀국 서두르는 이라크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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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후세인이 예뻐서가 아니다. 조국을 지키러 간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웃 국가 요르단에 거주하는 적잖은 이라크인들이 귀국을 서두르고 있다. 남는 이라크인도 많지만 '전쟁의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은 아랍과의 전쟁을 치러내기 위해 조국으로 향했던 이스라엘인을 생각나게 한다.

전쟁이 다가오면서 해외에 사는 이라크인들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부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대규모 속전속결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전쟁이 가져올 새로운 이라크에 대한 희망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라크를 사수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사담 후세인 정권에 대한 반감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국가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암만 시내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아비드 딜리미(41)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게를 요르단 친구에게 맡기고 귀국한다"며 이라크행 버스와 택시가 모여 있는 자르카로 향한다.

딜리미는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여러 친구들이 이미 이라크로 떠났다"고 전하고 "가족이 있는 고향에서 마지막까지 조국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부시의 굴욕적인 통치를 받느니 차라리 현재의 상황이 나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바그다드 서부 알라마디시(市)가 고향인 압드 알시타르 하미드(26)는 1주일 내로 귀국하겠다는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인편으로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일용직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하미드는 "수일 내로 공사가 끝나는 대로 즉시 출발하겠다"며 "죽어도 가족 곁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귀국하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이라크 남부 출신 시아파 이슬람 교도들이 많았다. 후세인 정권에 의해 장기간 탄압을 받은 그들이지만 가족과 고향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대단했다.

버스시간을 기다리며 쉬고 있는 카심 안와르(37).자알 후사인(37).파이즈 마하미드(35) 등 세 사람은 바그다드에서 2백50km 떨어진 이라크 남부 알사마와 출신 시아파 이슬람 교도들이다.

그들은 "귀국하기 위해 가장 좋은 옷을 골라 입었다"며 "우리는 후세인 정권을 지키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이라크를 보호하기 위해 고향에 간다"고 말했다.

요르단대 부설 전략문제연구소의 무스타파 하마르나 소장은 "이라크 정부가 해외 거주 국민들의 귀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에서 귀국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라크 당국이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족의 귀국을 독촉하라고 종용했을 수는 있다"고 추정했다. 가족과 떨어져 생계를 위해 해외에서 일하는 이라크인들은 여러가지 정치.경제적 이유로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전쟁을 목전에 두고 귀향을 서두르는 이들은 한가지 이유만을 말한다. 가족과 친지와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사진=아르빌 로이터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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