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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북적십자회담-김홍철<서울대 문리대> 이호재<고대정경대> 이영호 교수<미 조지아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분단의 장벽에 의해 흩어진 「가족 찾기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남북한적십자사 대표회담제의는 단절된 남북관계에 사실적 접촉의 길을 트는 최초의 「이니셔티브」다.
순수한 인도적 문제해결을 내용으로 하고 정치성의 개입을 배제한 제안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는 남북간의 접촉·대화의 길을 찾아야한다는 필요의 표현이란 점에서, 평화공존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간접적 표명이란 면에서 비정치적 차원 이상이다.
미·중공접근을 중심으로 국제정세의 조류가 평화지향으로 움직이고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주위상황을 적절히 파악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의 구상에 맞추어진 「이니셔티브」란 측면에서 여러가지 이점을 갖고있다.
사실 분단 4반세기에 이르는 시간 속에서 남북은 철저한 양극화와 긴장 속의 대치만을 계속해 왔을 뿐이며 주변정세의 흐름도 이 지역에서만은 그 작용이 둔화되었다.
지금에 와서나마 제기된 이번 안은 경직된 대북 자세를 융통성 있는 것으로 대체하고 감정적 차원에 머물렀던 남북관계를 이성적 「레벨」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제의는 또한 지금까지의 양측 관계에서 보아 획기적 제안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효과를 수반하게 된다.
첫째, 지금껏 소극적이었던 대북 자세를 적극화하고 평화공세의 측면에서 수세를 「이니셔티브」를 쥔 공세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남북대치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저발전 단계의 분단국문제로 평가되어 왔으며, 남북의 고착된 정책추구가 문제해결을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는 관점에서 이번 제의는 한국의 입장을 훨씬 개선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둘째, 남북간 정치적 접촉의 가능성을 촉진하게될 것이다. 사실적 접촉이 실현되고 이런 것이 수백번 거듭되고 나면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남북대표간의 공식대면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대북 관계 개선에 생산적 효과를 가져 올 것은 명백하다.
언젠가는 있을 남북대화에 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정부의 정책표명이 있은 뒤 민간「레벨」의 남북회담이 제의된 것은 앞으로 남북관계의 전개방향에 관해 정부·민간사이에 합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제의가 정부와의 협의아래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토대로 대북 자세의 전환이나 재조정이 구체화하게 되고 대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네째, 양쪽관계의 적대성을 줄이고 분단의 개선상황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제의가 나오는 과정에서 「북괴」라는 종래의 표현대신 「북한」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썼다는 사실은 불필요한 자극을 회피하려는 의사가 구체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주목된다.
이 제안은 국제적 평화조류가 주는 견인력을 고려할 때 상당한 실현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북의 태도표명이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정면거부는 그들로서도 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다만 국제관계의 해결이 어느 당사자 일방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이루어진 일은 없다는 경험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분쟁당사자는 어느 일방의 「이니셔티브」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공적을 허용하지는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업이 이루어지려면 양쪽의 묵시적 의사 성숙이 있은 후 제3자에 의해 제의될 때 가능성이 기대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 있어서는 공통의 제3자라고 할 수 있는 국제적십자사의 위치활용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된다.
남북한 적십자회담제의가 사실적 접촉의 첫 시도로서 던져진 만큼 앞으로 이러한 사실적 접촉의 방법은 여러 각도에서 확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술자료·고적자료·기상정보의 교환에서 문화재공동전시나 학자·체육교류에 이르기까지 개척할 분야가 너무나도 많다.
사실적 접촉 또는 비정치적 교류는 그것 자체의 의의는 물론 그에 의해 정치적 창구의 다음단계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어떻게 해서든 첫 단계의 성공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을 계획하기보다는 조그맣게 실현가능성이 큰 방법을 택해 한 단계씩 진전해 가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 될 것이다. 이번 제의를 내놓으면서 최두선 적십자사총재는 『인도적 사업이기 때문에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규정과는 마찰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런 문제를 포함해서 몇 가지 측면에서도 내적인 준비작업이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대북 관념의 점진적 정비 등으로 대내의식구조면에서 따라가지 않으면 상황격변에 따르는 혼란이 전진적 자세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북 접촉에 대비한 사전훈련 등에 관해서도 정책적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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