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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감사장에 훤하게 불 밝힌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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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29일 오후 1시30분 국회 본관 6층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 점심식사를 위해 국회의원들과 피감기관 공무원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지만 회의실 전등 55개 중 45개가 환하게 켜져 있었다. 12시30분쯤 오전 감사가 끝나고 다시 열리기까지 2시간 가까이 전력 낭비를 방치한 셈이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복지위를 포함해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 등 5개 상임위의 국정감사가 열렸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소등을 한 곳은 미방위뿐이었다. 미방위 행정실 관계자는 “정회가 선언되면 바로 불을 끄고 문 단속을 한 다음 속개 30분 전에 불을 켜둔다”고 말했다. 본관 6층 미방위 행정실에는 “전기 절약을 실천하자”는 내용의 공지문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어 있다.

 하루 전인 28일에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 6개 상임위 국감이 국회에서 열렸지만 정회 중에 전등을 모두 끈 곳은 산업위가 유일했다. 한 산업위 수석전문위원은 “올해 들어 전력난이 심해지면서 전기 절약 필요성이 강화돼 국정감사 때뿐 아니라 평소 상임위 회의 때도 자리를 비울 땐 불을 끈다”며 “아무래도 전력난이 산업위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보니 소등을 더 강조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불을 켜 둔 상임위 관계자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해명을 내놓았다. 복지위 행정실 관계자는 “국정감사 준비에 열중하느라 미처 신경을 못 썼다”고 했고, 정무위 행정실 관계자는 “직원들이 서류 정리 등 왔다갔다 할 일이 있어서 다 끄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회 중에도 전등 관리를 철저히 하는 상임위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국정감사가 종반에 접어들었다. 운영위·정보위·여성가족위를 제외한 13개 상임위는 지금까지 한 번 이상씩은 국회에서 감사를 진행했다. 합치면 40여 회에 달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교문위의 경우 감사가 자정을 넘긴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감사를 위해 자정 넘게까지 불을 켜두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정회시간이나 식사시간 같이 아무도 없는 텅 빈 감사장에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건 국회의 ‘전력난 불감증’을 방증한다.

 지난여름, 유례없는 전력난으로 국민들은 힘겨운 여름을 나야 했다. 올겨울에도 전력 사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절전에 대한 국민들의 협력이 없다면 블랙아웃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모범을 보이지 못할망정 전력 낭비의 현장이 된다면 어떻게 ‘전기를 절약하자’고 국민들을 설득할 건가.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