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의학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문의 김아무개에게 보다는 김 박사에게 진찰 받기를 원하는 것이 환자들의 통념이다. 의학박사는 무슨 병이든지 무불통달로 잘 고치는 줄 아는 이가 많다. 적어도 박사쯤 됐으면 공부를 남보다 많이 했으니 무엇이 나도 낫다고 생각한다.
현대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전문의가 남보다 임상교육(환자를 직접 다루는 교육=병 고치는 교육)을 더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식으로 알지만 우리사회에는 박사가 임상에까지 우월하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초기의 의사들이 개업에 박사명함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간에 대한 세계적인 논문을 수편씩 내었고 간치료에 뛰어나 간박사로 알려진 한심석 박사(서울대총장)는 임상과 먼 세균학의 연구로 의학박사학위를 땄다. 호흡기내과의 권위인 김경식 박사(서울대부속병원내과)는 병리학 의학박사다.
미국 의학이 도입되기 전에는 박사가 될 사람은 거의가 의대졸업 후 기초의학교실의 교실원이 되어 연구생활을 하다가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했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다시 임상으로 넘어와 한 교수의 제자가 되어 임상훈련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사실상의 전문의가 되었다. 오늘날 일본이 그렇다. 내과교수 밑에서 짧으면 5년, 긴 사람은 30년 이상이나 무급조수생활을 한다. 전문의제도가 없으나 사실상 졸업직후 개업한 사람 아니면 모두가 전문의라고 할 수 있다.
권이혁 서울의대학장은 박사는 기술과는 관계없으며 임상은 아무래도 전문의가 낫다고 지적한다. 권학장은 말한다. 박사란 지도교수 없이 혼자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증명이다. 따라서 학문연구의 계속을 전제로 한다. 「정상의 심볼」이 아니라 학문의 출발자격을 말한다. 대학교수나 연구자가 될 사람이 아닌 개업의에게는 목적이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의대의 경우 「레지던트」의 3분의2가 대학원에 적을 두고 박사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다. 이들은 전문의 시험과 때를 같이해서 학위논문까지 제출, 전문의인 동시에 박사가 된다.
미식제도를 도입하여 임상에서도 학위논문을 제출할 수 있게됐다. 연구대상자료가 풍부한 임상에서 「레지던트」 교육을 받으면서 동시에 박사 「코스」인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으니 학위 따기에 매우 편리하다. 이런 제도적 이점이 있고 취직을 하려해도 학위를 요구하는 풍토 때문에 되도록이면 두 가지 다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정상화위원회의 한 교수는 의학박사 때문에 박사의 「이미지」를 흐리고 박사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최근의 의학박사논문은 거의 「오리지낼리티」가 없는 단순한 통계자료수집에 불과하다는 것. 『한국인의…』 『한국에 있어서의…』를 빼 놓으면 남의 논문복제에 불과하여 이학석사논문만도 못하다고 혹평한다.
따라서 의사가 개업상 간판으로 필요하다면 미국의 교육학박사(Ed·D), 공학박사(닥터·오프·엔지니어), 신학박사처럼 직업박사 제도를 채택, 가칭 임상학 박사라도 신설해야 타당하다고 한다.
단 교수로 남아 연구생활을 계속할 사람만이 임상학 박사 아닌 본래의 박사 Pn·D를 해야할 것이라는 것. Pn·D의 의학박사논문이라면 자연과학본래의 원리를 발견한다거나 이론적으로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독자의 철학을 세움으로써 스스로 학문할 수 있는 자격을 나타내야 한다. 따라서 Pn·D는 학문의 출발을 뜻하지만 직업박사는 끝나는 것이다.
즉 직업전선에 나가기 위하여 필요한 공부를 마쳤다는 증명이 된다.
현재 내과의 권위로 알려진 한용철 교수(서울대 부속병원 내과)는 환자들이 한 박사라고많이 부른다. 실은 학위가 없다.
그는 외국의 저명한 교수 중에 의대졸업으로 취득하는 「닥터·오브·메리슨」(영국계통),「메디컬·닥터」(미국계통), MPH(보건석사) 등이 얼마든지 있음을 지적한다. 한 교수는 학위가 없어도 임상의로서 환자치료에 학위취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수많은 논문을 냈지만 굳이 학위를 따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 박사 아닌 한 교수인 것이다. 환자나 학생들은 그를 명교수로 존경하고 있다. <김현방기자> [컷·김사달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