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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의 경지 되찾은 섬광…우남 유묵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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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역대 제왕의 필적이라면 「어필」이라 하여 무조건 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치자 내지 인물에 대해 우러르는 마음이 거기에는 앞서 있다.
이러한 유풍은 오늘날의 정치가에도 답습되어 묵서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다. 본격적인 서예가는 아니지만 우남 이승만·백범 김구·성재 이시형·해공 신익희 제씨는 서도에서도 꼽히는 정치인들. 그 중에도 우남을 첫손꼽는 것은 그가 초대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다.
우남의 서예는 탈속한 경지라고 흔히 말한다. 한말 이후 몰락 일로에 빠졌던 우리 나라의 서예 계에서 아의 경지를 되찾은 한 섬광으로 보려는 견해이다. 그럼에도 서예 계에서는 막상 그를 「정치인」과는 별개의 「서도대가」로 평가하려하지는 않는다.
우남의 서예는 금추사나 한석봉 신자하의 뒤를 잇는 그런 서법을 취하지 않았다. 구한말에 유행하던 시체의 한 「스타일」이다. 시체란 구한말에 청나라 서예가들이 자주 왕래함에 따라 우리 나라 선비들이 본 땄던 글씨로서, 엄격히 말하면 서예의 정도를 배우는 법첩에 근거를 두지 않았다는데 특징이 있다. 그래서 우남은 서예로서 일가를 이룬 옹동화의 그것과 매우 갈아 뵈면서도 붓 자국에 근골이 약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유묵은 행서가 대부분이며, 해서나 초서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글씨의 외모가 딱딱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것은 속기를 벗어난 때문일 것이다. 우남은 전통적 선비다운 지와 서를 계속 가까이 해왔고 격과 안목에도 높은 분이다.
그는 비록 서예로서 일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가 처한 지위와 환경에서 우러난 달기로 말미암아 그의 화폭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는다.
다만 서예는 예술의 어느 분야보다도 인격을 요구한다. 서도의 바탕이 인격이라고 여기는 까닭이다. 위대한 치자나 대유의 수적을 귀히 여기는 것은 바로 그 정신의 초모인 것이다. 그 점에서는 우남의 유묵은 아직 평가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8월8일까지 신세계 화랑에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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