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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어디에- 폭우가 할퀴고 간 부여군 은산 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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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마을 초가집 24채를 휩쓸고 간 충남부여군 은산면 은산리 마을은 폐허처럼 수마에 할퀴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집과 논·밭을 몽땅 앗겨버린 이봉태씨(42)는 갓 낳은 종국군을 안은 채 흔적만 남은 자기집터에 주저앉아 『하늘도 무심하다』면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은산 국민교와 중학교에 임시 수용된 이재민 5백86명은 면에서 배급해준 밀가루로 죽을 쑤어먹으면서 지난 25일 밤 수마가 들이닥쳤던 악몽의 순간을 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난 25일 밤 8시쯤 가랑비가 내릴 때만 해도 마을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저녁밥을 먹고 바깥바람을 씌면서 벼농사에 알맞은 비가 내린다고 좋아하고 있었다. 1시간 후 가랑비는 폭우로 변했고 천둥벼락이 마을을 흔들기 시작했다. 무서운 폭우는 자정이 넘어서도 그치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26일 상오 6시30분쯤이었다. 빗속에서 『제방이 터진다』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 면사무소에서 위급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금강지류의 제방이 넘쳐흐르기 시작 한 것이었다.
전덕준 면장(47) 과 지서장 조종환 경사(41)를 비롯, 예비군 등 마을장정 1백여명이 제방쪽으로 달려갔다. 가마니에 모래를 넣어 제방의 약한 쪽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오7시 가까이되자 제방이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한군데가 터지자 둑은 잇달아 구멍이 뚫렸다. 산더미 같은 물은 마을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미처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위로 대피를 못했던 이상순씨(42) 일가족 8명은 물위에 뜬 자기집 지붕위로 올라가 4㎞ 떨어진 은산면 함양교까지 떠내려가다가 충북 영 5-789호 「버스」운전사 이광준씨에 구출됐다. 『어디로 가야 살 수 있겠습니까….』땅을 치며 통곡하는 마을사람들의 비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 이러한데도 구호의 손길은 늦어 참변 이틀후인 27일에 도복구반이 현장에 달려가고 있었다.【임시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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