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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학계 구명 기다리는 무령왕릉 출토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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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령왕릉은 온통 아름다운 연꽃 무늬로 감싸여 있다. 재실내부를 축조한 전 돌은 아로새긴 무늬가 부드러운 곡선과 「볼륨」의 연화 문이요, 왕과 왕비의 금관도 연화 문이 중심을 이루었다. 관의 금·은 장식에 연화문이 보이는가 하면 왕비의 금 뒤꽂이에도 연꽃 봉오리와 연화 문이 아울러 새겨졌다.
등감의 형태는 주형 광배나 화염형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보주형 이라 해도 무리하지 않다.
연화 문이란 곧 불교미술과 함께 동양 전체에 퍼져 있는 무늬의 한 양식이다. 무령왕이 세상을 떠난 즈음은 백제에 불교가 수입된지 1백50년 남짓하지만, 어느 백제고분 보다도 불교적 색채를 짙게 간직하고 있었던게 사실이다.
이 왕릉보다 고격인 송산리 6호 고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원숙·만개한 상태이다.
물론 무령왕릉에 불상이 있다든가 불교의식의 기물이 포함된 것은 아니다. 그의 장사는 아들 성왕에 의해 거행됐으므로 백제에 있어 불교전성기의 미술공예가 여기에 집약해 표현됐다고 보려는 것이다. 즉 양 나라와의 교역을 통하여 문물을 수입 해다가 그것을 일본에 전파한 백제문화성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리라는 점에 관계 전문가들은 이의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이목을 모으는 무늬는 금관입식이다.
주관은 바람에 날리는 듯한 인동무늬를 바탕으로 하여 그 마루에 활짝 핀 연꽃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여관은 연화 좌의 한 가운데에 화병을 하나 올려놓고 연꽃을 꽂았으며 좌우로 인등을 가지런히 세웠다.
여관은 다른 금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좌우대칭의 수법이며 매우 안정감을 주는데, 왕관은 그와 정 반대. 『부정형의 리드미컬한 인동 무늬에다 영락을 달아 한층 장중하고 열정적이다.
이러한「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라서 흥미 있는 비교 연구 과제가 될 것』이라고 이대박물관장 주홍섭 교수는 말한다.
국립 박물관 윤무병 학예관은 왕관의 무늬구성이 역시 수지에서 발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인데 불상 광배의 화염무늬나 비천의 천의자락을 처리하는 수법과도 비교 검토되고 또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인동 무늬와도 종합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백제가 가진 양식면이 밝혀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김원룡 관장은 백제의 연화문을 통틀어 「자연적」「인간적」이란말로 설명하고 『백제인의 그러한 심미안은 호남소산의 고려청자에까지 계승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두침의 금박벌집무늬, 장신구의 당초문·보상화문·반용문 및 다리미에 붙어 있는 비단의 직문 등이 정확한 연대를 갖고 출토됨으로써 문양연구의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석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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