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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권을 건 단상 단-|신민당 대회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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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민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시민회관 안팎은 당수후보자들의 사진을 붙인 피키트와 플래카드·선전벽보와 전단 등으로 붐벼 통행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대회가 열리는 시간인 아침8시부터 김홍일 양일동씨 측에서 2백여 개의 피키트를 주로 부녀 당원들이 들고 시민회관 입구부터 밖으로 줄지어 늘어섰다.
김대중씨 측은 1백여 장의 벽보를 주위의 벽마다 빈틈없이 붙였다.
후보자들의 피키트 내용도 가지가지여서 「융화, 단합」·「강직·결백의 인물」·「항일 투사」(김홍일씨) 「젊은 민주주의의 기수」(김대중씨), 「항일·반 독재의 투사」(양일동씨)등…
또 각 계파의 보스들의 선물(주로「타월」)과 선전 유인물 등이 입장하는데 의원들에게 배부되어 대의원들은 한 보따리씩의 선물 서류뭉치를 챙기기에 바빴다.
대회장안의 단장에는 공화당에서 보낸 큼직한 화환이 제일 먼저 올라왔다. 단상 양편에는 「수권태세 확립하여 다같이 전진하자」 「우리 힘 굳게 뭉쳐 국민여망 보답하자」는 구호가 걸렸다.
8시 조금 지나 고흥문씨를 선두로 당직자들이 입장했으나 회의시간이 두 시간이 지나서야 대의원입장이 끝났다.
유진산씨는 전당수의 예우로 단상 맨 가운데좌석에 앉고.
한편 19일 밤 마지막 조직점검을 끝낸 각파는 자파 대의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여관마다 국회의원 1명씩을 배치하고 조를 짜서 조장의 지시에 따라 행동토록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하고 바로 대회장으로 나왔다.
1차 투표 결과가 예상과는 달리 김홍일, 김대중씨 간의 표 차가 1백 표 이상으로 나타나자 김대중씨 측은 의외라는 듯 굳은 표정들.
승세를 보인 김홍일씨를 미는 범주류 측이 2차 투표에 들어가자고 주장했고, 비주류는 21일로 미루자고 맞섰으나 범 주류 측의 강력한 요구로 유청 전당대회 의장은 2시45분 2차 투표에 들어간다고 선언.
제휴를 약속했던 김대중씨 측과 양일동씨 측은 단장 뒤에서 단결을 위한 타협을 모색했으나 양씨 측이 『당수만 주면 다른 것은 양보할 수 있다』고 김씨를 밀 것을 거부했다.
이 막후 협상에는 김씨 측에서 윤제술, 김상현, 박종률씨 등이, 양씨 측에선 김기섭, 윤택중씨가, 그리고 1차 투표 때 양씨를 밀었던 탈 계보세력의 박병배 의원 등이 참여했다.
1백여 표 차로, 1차 투표에서 비주류를 이긴 범주류 연합세력의 김영삼, 이철승 금형일, 김재광씨 등 각파 「보스」와 참모들은 득의에 찬 표정으로 2차 투표에서 결말을 짓자고 나섰다.
1차 투표 결과가 밝혀지자 김홍일씨는 단상에서 시종 말없이 담담한 표정.
2차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①1차 투표에서 김대중씨 3백60표 이상일 경우 양씨가 김씨를 밀고 ②양씨가 2백50표 이상일 때 전씨가 양씨를 밀기로 했던 김·양씨 간의 잠정적 협약은1차 표 결과가 모두 충족시키지 못해 백지화 된 셈. 그래서 양씨는 2차건 3차건 경쟁을 계속, 후보를 사퇴치 않겠다고 고집했다.
당수 선출에 앞서 전당대회 의장 선출 문제를 두고 범 주류 측은 권중돈씨를, 김대중, 양일동씨 측은 유청씨를 각각 밀어 타협을 위해 숨가쁜 막후협상을 벌였다.
전당대회 의장 선출 문제는 3명의 후보대표 2명씩이 참석한 6인 막후 협상에서 범주류 측이 이 문제부터 실력대결을 벌여 캐스팅·보트를 쥔 양씨 측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비교적 수월히 유청씨로 낙착했다.
이 과정에서 6인 대표는 ① 정무위원 25명은 당수가 되는 쪽이 15명, 차점자 측이 10명씩을 안배하고 ②전당대회 회장을 비주류에 양보하는 대신 중앙 상위의장은 주류 측이 갖는다는 합의 각서에 서명했다.

<지도체제변수>
▲67년2월7일=민중당(대표 박순천), 신한당 (대표 윤보선) 이 통합, 신민당으로 창당. 당대표에 유진오, 대통령후보에 윤보선씨를 만장일치로 선출. ▲70년1월26일=임시전당대회에서 전진오씨의 사퇴(신병이유)에 따른 지도 체계를 개편, 당대표 위원에 유진산씨를 선출.
(1차 투표 유진산=2백86, 이재형=1백92, 정일형=1백25, 2차 투표 유진산=3백27, 이재형=2백76)
▲70년 9월29일=임시전당 대회에서 김대중 씨를 대통령후보로 지명. (1차 투표 김영삼=4백21, 김대중=3백82, 무효=82. 2차 투표 김대중=4백58, 김영삼=4백10, 무효=16)
▲71년1월 11일=총선에 대비한 선거대책기구로 운영 회의를 구성, 부의장에 양일동(재석 31명중 23표), 고흥문씨 (18표)를, 1차 투표에서, 홍익표씨(22표)를, 2차 투표에서 각각 선출하고 선거대책 본부장에 정일형씨를 임명.
▲71년5월7일=전국구 공천파동 (진산 파동) 에 의한 유진산 당수의 사퇴로 김홍일 전당 대회 의장을 당수 권한 대행으로 운영회의에서 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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