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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비닐」우산식 행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서울 북가좌동에서 살고 있다. 형편없는 변두리 시민인 것이다. 그래서 세금만 부지런히 냈지 받는 혜택이라곤 별반 없다. 교통문제, 오물문제, 상수도문제….
그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상수도의 결핍이다. 왜 수도물이 안 나오는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국민주택은 15년쯤 전에 만들어졌고 그때부터 수도시설이 돼서 수도사정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게 해가 가면 갈수록 양이 적어져서 요즘은 며칠만에 한 두시간씩 꼬마들의 오줌줄기처럼 쫄쫄거리고 나온다. 아주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심심찮게 시장실로 찾아간다. 시장실로 찾아가는 것은 비단 수돗물 때문만은 아니다. 장마철에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 쓰레기처리 때문일 때도 있다. 왜 오물처리 하나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일까?
반드시 나라가 가난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설명이 충분할 수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서울시의 막대한 예산이 엉뚱한 방향으로 낭비되는 것은 예의라고 하더라도 소위 도시행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돼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응암동 앞의 하수도만 해도 그렇다. 하수도 공사를 시작한지가 벌써 여러 해가 됐다. 그래도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고, 비만 오면 항상 물바다이다.
이게 서울시의 행정이다. 어제 한 도로포장이 금방 터지는 것은 고사하고, 다시는 무허가 판잣집을 인정하지 않는다지만 산언덕에는 늘어만 가는 게 판잣집이다. 무엇 하나 근본적으로 양심껏 처리해 보겠다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행정을 「비닐」우산장사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판국에 폭우로 시민 몇 십명이 죽는다고 해도 그건 하나도 놀라운 것이 없는 일이다. 으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보다 더 비참한 비극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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