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계는 자못 「문화외교」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외교관보다 한 발짝 앞서 문화관이 먼저 문을 여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 「문화」라는 두 글자는 비록 외교적으로는 경화된 사이일지라도 상대국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드·골」대통령 재직시, 미국과 프랑스는 사시의 관계였다. 물론 그럴만한 「내셔널·인터레스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두 나라의 감정은 저마다 굳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무렵 「뉴요크」박물관에서는 「모나·리자」가 미국시민들 앞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모나·리자」라면 너무나 유명한「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명화이다. 이것이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서 「뉴요크」로 잠시 옮겨진 것이다. 미국시민의 마음이 한결 흐뭇해졌음직도 하다. 실로 이 행사는 양국의 특사가, 지중해를 몇 번 건넌 것보다도 몇 배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우선 가까이 서울의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 문화외교의 시대를 실감할 수 있다. 미국공보관에, 영국문화원의 도서실, 프랑스 문화원, 독일문화원에, 이제 일본문화관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자국의 책들만을 한국인에게 보여주는 일로 만족하지 않는다. 장학생까지 뽑아 가는 나라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적인 범주」로만 생각할 수는 없다. 문화는 인류공유의 유산이라는 대의명분 속에서 은근히 자국의 프라이드와 품위를 높이려 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도 해외공관과 곁들여 활발한 문화외교를 시도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오,「코리언」! 「더·코리언·워!』 (오 한국인, 그 한국전쟁으로 유명한 한국 사람) 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얼굴이 화끈해질 것이다. 그러나『오! 한국사람. 네, 그 당신네 나라의 고려자기는 참 아름답더군요!』라는 소리라도 듣는다면 얼마나 어깨가 으쓱해지겠는가. 말하자면 「문화외교」란 그런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정치의 신임보다는 문화의 신임장이 더욱 중요시되며,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문화의 향기를 해외에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내국에서 파고드는 해외문화의 공세에도 일단 눈을 부릅떠야 할 것 같다. 가령 일본문화관에서 『국화와도』(「루드·베네딕트」의 말)의 그 음산한 미소를 풍길 때 우리의 기분은 별로 상쾌하지 않을 것 갈다. 더구나 우리의 복고취향에 업혀 일본의 싸늘한 환상이 우리를 서서히 휩싸기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난다. 「허만·칸」의 말마따나 서력 2천년은 일본의 시대라는데-.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윤리관·가치관, 그리고 국가적 프라이드가 아쉬워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